BLOG ARTICLE 리처드 매드슨 | 2 ARTICLE FOUND

  1. 2008.02.14 읽은 것들, 꼬리에 꼬리를 물고...
  2. 2008.01.18 바이러스, 어쨌든 좀비


1. 아름다운 아이 - 이시다 이라

아름다운 아이
국내도서>소설
저자 : 이시다 이라 / 양억관역
출판 : 작가정신 200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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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 이라는 4Teen에서도 그렇듯이 14세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적당한 긴장감, 적당한 어둠, 적당한 희망..... 적당한 느낌이었다.
좀, <사전꾼들>과 같은 느낌을 기대해서인지, 무난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시시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열네 살이지만 4teen에서의 밝고 건강한 느낌의 열네 살과는 다르다. 범죄를 저지른 동생, 그리고 그 가족이기에 추궁당하고 때문에 부차적 피해자가 되버린 감자의 가족. 인권 어쩌구의 문제가 이래서 생기는 거라. 순서처럼, 평범하던 감자의 가족은 무너진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미 가족은 붕괴일로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곳의 아이들은 아슬아슬하다. 감자의 친구들이 그렇고, 밤의 왕자가 그렇고. 물론 감자의 동생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희망은 열어놓았으니, 다행인 건가?


2. 나는 전설이다 - 리처드 매드슨

나는 전설이다
국내도서>소설
저자 :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 / 조영학역
출판 : 황금가지 200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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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다. 아니 멋졌다! 원작이 제일 재미있었다. 세 번이나 영화화되고 그때마다 왜 원작 팬들의 차가운 혹평이 쏟아졌는지 알 것 같았다.
원작, 훌륭하다. 다 읽고 나니, 몇 개의 소설이 생각났다.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내가 읽은 건 무슨 고양이 어쩌고였던 거 같은데 오래돼서 정확한 제목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알베르토 산체스 피뇰의 <차가운 피부>... 생각해보니 꽤 많은 창작품들이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나 보다.
그로테스크한 매력은 강한 인상으로 각인되어 자신도 모르게 퐁퐁퐁 이미지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뒤의 단편들은 딱 <환상특급> 시리즈가 연상되는 작품들이다. 비슷한 분위기로 셜리 잭슨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어쨌든, 나름대로 비슷한 작가 군을 만들어 본다면, 래이 브래드버리, 셜리 잭슨, 로알드 딜.... 요쪽 과, 다시 말하면 에드가 엘런 포의 아이들인가? 어, 그러고 보니, 모파상-포 라인인가?
자, 다음......;


3. 제비뽑기 - 셜리 잭슨

소설의분석(현암신서82) 상세보기

에드가상수상작품집 2
국내도서>소설
저자 : 정태원
출판 : 명지사 1999.05.25
상세
유감스럽게도 셜리 잭슨의 작품은 우리나라에 단행본으로 소개된 것이 없다. 그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책 두 권을 대신 올려봤다.

이건 그냥 덤으로, 말 나온 김에.
셜리 잭슨의 <제비뽑기>를 읽은 것이 1995년인가? 그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상당히 충격적이고 굉장해서 뇌리에 박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당시 <제비뽑기>가 실린 책에 체홉의 <마부>가 같이 실려 있었는데(거참 묘한 조합이로세), 이 두 작품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다(하나는 말 그대로 신선한 충격, 하나는 가슴 짠한 감동). 짧기도 오라지게 짧다(둘 다).
그때 이 작품에 흥분해서 후배들한테 읽으라고 권해주고, 빌려주진 않고; 복사해서 돌렸는데 이 아이들의 반응이 시큰둥해서 또 다른 충격을 받았던 기억.
워낙 짧아서, 그리고 뭔가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그냥 스포일러가 되어 버리니....
평화로워 보이던 모임은 사실 희생제의였다. 섬뜩했던 작품.
인류는 아무리 잘났다고 해봐야 가장 원시적이며 동물적인 감각,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제물이 필요하고, 그래서 인류는 끊임없이, 여전히 새로운 형식의 희생제의를 한다고 본다.
희생제의 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아... 너무 사랑하는 작품.


4.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 어슐러 르 귄

바람의 열두 방향
국내도서>소설
저자 : 어슐러 K. 르귄(Ursula Kroeber Le Guin) / 최용준역
출판 : 시공사(단행본) 200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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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으로 여러 곳에서 소개가 되었고 나 또한 중복으로 여러 개 가지고 있는 단편이다. 이 작품이 실린 가장 최근에 출판된 것이 르귄의 <바람의 열두 방향>이다.

말 나온 김에,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르 귄의 단편으로 역시나 인상깊은 작품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희생제의다.
오멜라스의 아이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지하실에 있는 '아이'를 처음 보게 된다.
그 아이는 쇠사슬에 묶인 채 짐승보다 못한 모습으로 평생 햇빛도 보지 못하고 지하실에 갇혀 산다. 물론,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구제하거나 돕지 않는다.
'그 아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그 '아이'를 보러 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행복에 감사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오멜라스를 떠난다. 그들은 항상 혼자 떠난다. 어느새 그 행렬은 말없이 길게 이어진다. 그렇게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정말 가슴이 묵직한 것이 머릿속에서 무언가 막 공허하게 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몇 번을 읽고 또 읽고, 헤져서 새로운 단편집을 사서 읽고 또 읽고. 구라를 조금 보태서 100만 번 읽었다.
지금도 너무 사랑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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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를 본 후, 좀비 영화라는 인식이 꽉 박힌 <28일 후>를 드디어 보게 됐다.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이, 나는 좀비 영화를 무척 싫어한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 집요함에 질려서라고나 할까.
이런 인식이 박혀버린 건, 아주 옛날옛적에, 무덤에서, 또는 거리에서, 또는 살해 현장에서, 시체들이 마구 일어나 산자들을 공격하는 영화 때문이다.

이것들은 죽여도 죽여도 사지가 움직이는 한 계속 공격한다.
그것이 질려 버린 첫 번째 집요함이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 몰려오고 이미 죽었으니 죽지도 않는, 생각만 해도 멀미가 솟구치는 좀비들.
초기 디아블로(헬파이어)를 할 때였다. 열심히 노가다로 레벨 업 해서 상당한 양의 물약과 아이템을 구비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후 헬로 간다. 그러나 죽여도 죽여도 지치지 않고 다시 공격하고 수를 더하던 몬스터들의, 그 수와 그 집요함에 질려서 내려갔다가 올라가기를 몇 번 반복한 후에야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있었다. (일단 소심해서) 그 음산한 배경음과 어두운 그래픽도 한몫한다. 쓸데없이 고전 게임 얘기가 나와버렸는데, 같은 맥락의 질림에 대한 감상이라고 해두자;;

두 팔을 뻗어 뒤뚱거리며 느릿느릿 움직이면서도 멈추질 않는다. 게다가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자기 팔다리가 덜렁거리는 데도 계속 움직인다. 눈깔이 눈구멍에서 빠져나오고, 코가 뭉그러지고, 머리칼이 빠지고, 옷은 입으나 벗으나 찢기고 삭고, 어쨌든 모든 게 너덜너덜한데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고약한 냄새까지 풍긴다.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언가 갈구하듯 계속 산자들을 향해 공격한다. 마치 삶에 대한 집착으로 보인다.
그것이 질려버리는 두 번째 집요함이다.
삶이라는 건 산자만이 갈구할 수 있는 욕망이다. 기존에 내가 본 좀비 영화는 일단은 죽은 자들이다.
무엇이든 순환을 역행하는 건 질리게 한다. 물론 그리움과 안타까움이라는 의미의 소망과 기원 자체는 순환의 역행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원인은 어쨌든 인간 때문이다.
인간의 '무엇'이라고 단정 짓지 않아도, 인간이 행했던, 행하는, 행할 악행이라는 건 무궁무진하다.
나도 물론 거기에 포함 된다. 간혹 아주 치가 떨릴 정도로 섬뜩하게 하는 '인간' 나를 포함 인간이 가진 욕망, 그것이 세 번째 질려버린 집요함이다.

이것이 지금껏 좀비 영화를 안 봤던 어설픈 이유다.
다 집어치우고, 실제 이유는 혐오감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다시 영화로.

<나는 전설이다>를 본 후, 주변에서 <28일 후>를 적극 추천해줬다.
<28일 후>는 그전에도 여러 번 추천을 받은 영화였다.

두 영화를 본 추천인들의 반응은, <나는 전설이다>는 <28일 후>에 비해 별로라는 평이었다.
두 영화를 본 후 내 느낌은, 둘 다 비슷했다.
그리고 별로였던 영화였지만, 큰 줄거리로 봤을 때 <레지던트 이블>, <새벽의 저주>와도 유사했다.
그래서 이 영화들의 모티브라는 리차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샀다.

<28일 후>를 보며, 그들은 다행히 혼자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네빌이 측은했다.
<28일 후>는 특별한 정보도 없고 기술도 없는 민간인들이 감염으로 다수가 된 변종들과 맞서며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폭력과 욕구에 초점을 맞춘 거라면, <나는 전설이다>는 혼자 남은 인간(그러나 <28일 후>와는 달리 정보와 기술을 지녔다)이 변종들과 더불어 극도의 고독과 싸워야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이 영화는 어디에 초점을 맞췄느냐의 차이만 느껴졌다고나 할까.

나는 둘 다 괜찮았다.
공통적으로, 두 영화에 나오는 변종들은 일단 기존 좀비들과 달리 무지 빠르고 상당히 맹렬하게 공격한다. 이점은 기존 좀비 영화에서 느꼈던 아둔함과 느림에 의한 질림을 극복하게 해주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28일 후>는 미국 영화에서 보이는 기독교적(윤리적) 교시가 덜 하다고나 할까. 유럽 영화들의 이런 부분은 참 신선하고 좋다. <파니 핑크>나, <퍼니 게임> 같은 영화처럼. 물론 데미지가 큰 경우는 있지만...
예를 들어, 감염 사실을 아는 순간 무자비하게 동료를 도륙하고, 감염된 자라면 그것이 어린 소년일지라도 방망이로 내쳐버렸던 점. 또는 군인들의 집단 히스테릭 같은 것.
<나는 전설이다>는 워낙 헐리우드 영화에 윌 스미스 주연이라 어느 정도 '헐리우드'적일 거라 예상했던 반면, 의외로 좀 덜했다는 것. 변종들의 과도한 그래픽이 좀 거시기 하긴 했다. 이런 건 아날로그 방식이 훨씬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 약간.
어쨌든, 두 영화 모두, 결국 인간은 승리하고, 다시 개척할 것이며, 다시 번식하고, 번성할 거라는, 결국 인류 승리다.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는 본작도 본작이지만 같이 실린 단편들도 무지 땡긴다.
리처드 매드슨이 환상특급과 X파일의 바탕이 되거나 원작자였다는 얘기를 들은 후 더욱 기대가 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황금가지다! 똥 밟았다.
아직 읽지 않아 번역이 어떨지는 모르겠고, 읽은 후 다시 한 번 씹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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