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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27 <물로 머리 감기> 실패담




<by Tiffany Noonan>


1. 길고 긴 서론;

타고난 머리결이 완전 좋지 않아서 그동안 머리에 쳐들인 돈이 기백이 넘는다.
3년 전부터 이런 저런 이유로 매직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염색, 펌 등을 전혀 할 수 없어서 머리꼴이 말이 아니다.
이런 내가 기댈 수 있는 방법은 각종 샴푸와 헤어 에센스, 팩 등이다.
그럼에도 곱슬에 강모에 어마어마한 숱, 거기에 한술 더 떠 돼지털, 아니 싸구려 먼지털이 같은 머리결은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미용실에 갈때마다, "혹시.... 펌하신 건가요?" 라고 질문하는 미용사에게, 아니라고 대답하면, "아이구, 매직 하셔야겠어요." 라는 말을 반복해서 듣는다.
그럴 때마다 거울 속의 미용사를 빤히 쳐다보며 한마디 하고 싶은 걸 꾸욱 참는다.
당신 왜 매번 물어보는 거야?

어릴 때, 울엄니는 아침마다 내 머리를 묶거나 땋아주시며, "어째 머리가 이 모양이야." 라고 억세게 당기셨다. 아프다고 조금만 칭얼대면 내 뒤통수를 쥐어박으시던 엄마. 그럴 때마다 내 죄도 아닌데 주눅이 들던 어린 마음. 그건 내 죄가 아니어요!

엄마의 반곱슬, 뜨는 머리카락과 아빠의 강모와 엄청난 머리숱을 골고루 물려받은 유전자의 승리가 바로 나인 거다! 빼도 박도 못하는 엄마아빠의 창조물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게 재료가 문제가 아니라 혼합 비율이 문제인거다. 일례로 내 동생은 엄마에게서 살짝 반곱슬에 부드럽고 가는 머리카락을, 아빠에게서는 풍부한 머리숱을 물려받았다.

매일 매일 머리묶기 싸움에 지친 엄마는 머리카락을 자르려 하셨지만, 여자는 머리카락이 생명이라 여기시는 울 아부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아침마다 엄마가 주는 꿀밤과 머리털이 뽑히는 고통으로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서 학교 가는 내 모습이 측은하셨던 아빠의 결정으로, 아침에 옆집 미용실(엄마 친구분 댁)에 가서 머리 셋팅하고 학교가는 럭셔리(!) 초딩이 되었던 것이었더랬다!
그래서 매일 매일 참 다양한 머리 모양을 하고 학교에 가곤 했지만, 하교때가 될 즈음에는 머리숱과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인지 늘 머리가 풀려 있거나 느슨해졌다.
특히 양쪽 귀 위로 올린 양갈래 머리를 자주 했는데, 그 머리는 늘 한쪽만 풀리곤 했다. 그러면 5, 6학년 언니들(전혀 모르는 언니들)이 내 머리 묶어준다고 붙잡고 시름을 해댔는데, 그렇게 묶으면 용케 집에 갈때까지 잘 버텨주었더랬다.
여튼 당시에도 내 머리는 많은 이들에게 도전의식을 불태우게 한 건 맞다. 이후에도 많은 미용사들이 내 머리카락에 도전하곤 했다.

그동안 놀라운 미용기술의 발달로 꽤 평범한 머리결을 유지했던 나는 요즘, "아 그래! 내가 원래 이런 머리카락이었지!" 하며 울엄마, 아빠 딸이 틀림없다는 사실과 그 엄청난 유전자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


2. 짤막한 본론;

그래서 이런 저런 방법을 찾던 중, 돈 안들이고 머리카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물 없이 머리 감기>라는, 도전을 시작했었다.

4월 29일부터 시작한 <물 없이 머리 감기>에는 두가지 취지가 있다.
하나는 환경 오염을 줄이자인데, 샴푸가 아니더라도 매일 비누와 샤워폼을 사용하고 세탁기에 세제를 넣어 돌리는 생활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 이런 거창한 취지는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머지는 두피를 가장 베이직한 상태로 만들어 스스로 피지 조절을 하여 가장 이상적이고 건강한 두피를 만든다는 거다.
이 방법은 탈모 예방에 좋다고 한다.

<탈모>!!!!
전혀 나와 상관없다!

두피는 건성이며 머리카락도 건성이다. 원래 두피가 건성이면 머리카락도 건성인건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
주변에서 탈모 뿐만 아니라 악건성이 선배가 이 방법으로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는 얘기는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악건성이다.

그래서 한달동안 시행했다.
매일 매일 머리를 감았다.
나는 머리카락 숱이 많고 곱슬에 강모다. 게다가 어깨 위에 닿는 길이다.
참고로 난 이 상태에서 머리를 짧게 자르기 어렵다. 그럴 경우 모자를 쓰지 않으면 외출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ㅠㅠ

머리 감기가 이렇게 힘들기는 또 오랜 만이다.
너무 너무 힘들었다. 숱이 많아 두피 전체를 물에 적셔 불린다(?)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일반적으로 샴푸를 할때보다 머리카락을 물에 많이 불려야 한다는데, 이게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손으로 두피 구석구석 마사지를 해줘야 하는데 물에 젖어 뻣뻣해진 머리카락을 헤치고 두피를 닦아내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손에 묻어나는 기름기 때문에 찝찝한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마지막은 늘 식초로 헹궜다.
찬물과 더운 물을 번갈아 뿌려댔지만 머리를 감고 나서도 개운한 느낌이 들지 않아 괴로웠다.

의외로 머리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한나절이 지나면 찝찝한 기분이 더해갔다.
머리결 때문에 하루에 세 번 정도 브러쉬를 해주는데, 다음 날 아침에 브러쉬한 빗을 보면 하얀 기름기가 묻어났다.
이 <물로 머리 감기>를 도전했던 영국 여성들이 프로젝트를 마친 후, 한두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감이 한결같이, <다시는 하지 않겠다>며 <당장 샴푸하고 싶다>는 말이었단다.

아!!!! 정말 괴로웠다!!!
매일 매일이 괴로웠다. 욕실에서 풍기는 은은한 샴푸향의 유혹을 견뎌내는 것이 힘들었다.
매일 샤워 전에, <샴푸를 하자. 이런 상태라면 스트레스가 더 좋지 않다>라며  자기 합리화하기를 몇번, 그럼에도 용케 한달을 버텼다.
한 달 겨우 되는 시점에 제대로된 결과를 얻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었지만, 적어도 6개월이 지나면 머리카락과 두피는 자연상태의 건강한 모습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3. 구차한 결론,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이 <자연상태>
자연상태의 나의 머리는 돼지털이다! 아 슬퍼 ㅠㅠ

한 달이 다 되어갈 즈음, 머리카락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카락은 더없이 뻣뻣해졌다.
태어나서 이렇게 뻣뻣한 상태는 처음이었다. 마치 모든 기름기가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 같았다.
혹시 싶어 머리감기를 하루 건너뛰었다.
아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 ㅠㅠ
그러나 나아지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빗는대도 그 뻣뻣함에 빗질이 어려웠다.
그래서 결심을 굳혔다.

샴푸하자!

그렇게 한달을 하루 남기고 오늘 샴푸를 썼다.
혹시나 싶어 평소 양의 반보다 조금 적은 양으로, 평소보다 충분히 거품을 준 후 머리카락 끝에서 부터 거품을 입혔다. 되도록 두피쪽에는 직접 닿지 않게 샴푸 거품을 입힌 후 재빨리 씻어냈다(평소와는 반대). 그리고 식초로 마무리를 한 후 찬물과 더운물로 번갈아 헹궈주었다.

그리고 지금...
너무 행복하다! 개운하다! 부드럽다! 가볍다!

난 <물로 머리 감기>를 포기했다.
6개월을 버텼다면 머리카락이 많이 개선됐을지도 모르지만, 한달동안 <물로 머리감기>를 해서 얻은 결과는 거의 없었다.
늘 신경이 쓰였고, 머리 감기가 괴로웠고 머리카락은 심하게 뻣뻣해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뻣뻣해진 건, 어쩌면 우리 동네 물이 좋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지만.
득이라면 린스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 한달동안 샴푸 지출을 줄였다는 점이다.
앞으로 샴푸는 적게 쓸 것이고 린스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 샴푸 어디서 팔아? 정말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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