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아이노 쿠사비 | 1 ARTICLE FOUND

  1. 2005.05.25 힘든 에로에로의 생활


* 초큼 여성향








아이노쿠사비(間の楔)

1.
나의 최초 에로에로 영상물에 관한 기억은, 아주 오래전, 야오이니 BL이니 하는 명칭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아예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했던 시기다. 내 기억으로는 그런 명칭조차 모르던 때였다.
당시 아는 선배가 자신의 친구와 함께 가져온 애니가 <아이노쿠사비>였다.
얼마나 유명한 애니인가! 물론 그 당시에 이 애니가 유명한 애니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절애 내게는 그 어이없는 작화에 충격을 주었던 작품>에 비하면 그 그림의 완성도는 비교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높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에 나와 친구들은 이런 류의 애니를 보는 것이 생소했다. 내게 애니메이션이라면 당연히 SF 장르와 같았다. <건담시리즈>와 <마크로스>, 그리고 <로보트 카니발> 종류 말이다.
물론 <아이노 쿠사비>는 언뜻 SF였다.
그래서 호기심이 일었지만, 기본은 러브 스토리였다.
사랑 따윈 모르던 철부지는 러브 스토리라는 느낌에 호기심은 금방 시들해졌다.
그리고 지나치게 진지하여 보는 내내 그 애니에 대한 숭배와 침질에 반감을 품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 이 삐뚤어진 치기어림.
나와 친구들은 <아이노 쿠사비>를 보며 웃었다. 왜 웃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배꼽을 잡고 웃었다.
기억나는 건 단 한 장면. 금발의 아름다운 권력자가 소유욕에 불타 검은 머리의 주인공에게 링을 끼웠던 장면이다. 그 장면이 인상적으로 웃겼다. 다시 말하지만, 사실 왜 그리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의 취향을 진지하게 배려해주지 못했던 것이 무척 미안하게 생각된다.
미안, 선배. 그런 의미로 다시 봐봐야지.

2.
두 번째 본 에로에로 영상물은 친구에게서 빌려 온, 제목도 기억 안나는 이성애 에로 애니였다.
상영회(?)가 있던 그날은 지금도 기억난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너무 더워 거실에 나와 에어컨 틀어놓고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 다리가 욱씬거렸던 날이다.
그날 친구들과 숙취에 시달리며 잠시 머리를 깨우려는 의도로 그 비디오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는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에로 주제에 스토리를 갖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느끼게 한 경험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얼마 후 이런 우리를 발견한 룸메이트의 증언에 의하면, 에로에로한 음향소리와 살굿빛 색상이 넘실대는 화면 밖으로, 거실 여기저기에서 널브러져 코를 골며 자고 있던 우리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고 한다.
다시 보려 했지만, 되돌려 감는 시간을 버티기에 우리 위장이 공허하여 그대로 맛난 음식을 찾아 밖으로 나가야 했다.
원래, 어쩌다가 그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좀체 다시 시도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게다가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면 더더욱 말이다.

3.
세 번째 에로 영상물은 게이 물이었다!
아주 짤막한 이 영상물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말미암아, 아주 느린 전용선임에도 훌륭한 편집과 가벼운 용량으로 승부한 배포자의 노력으로 받아 볼 수 있었다.
기억나는 건, 금색 단발머리의 미청년이 하늘거리는 블라우스 앞단추를 풀어헤치고, 역시 하늘거리는 커튼이 있는 창가에 뒤돌아 서 있는 어떤 자의 똥꼬를 핥는 장면이었다.
덕분에 역시 실사는 취향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4.
네 번째 에로 영상물은 야오이 애니였다. 같이 보자고 가져온 후배의 독특한 발음이 기억난다.
꽤 유명한데 제목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고 보쿠노 어쩌구였다는 것만 기억난다.
간단히 요약한다면 소파 승진이지만 사랑이었다는, 뭐 그런 내용.
이 애니에서 기억나는 건 단 한 가지 뿐이다.
납치 감금된 주인 수를 구하러 온 주인 공이 납치범을 두들겨 패 준 후, 양복 안주머니에서(그 말쑥한 럭셔리? 복장으로) 옥수수를, 마치 칼을 뽑듯이 갖은 폼을 잡으며 꺼내 든다.
심지어 옥수수는 광택제를 바른 듯 번쩍거렸다.
그리고 주인공은 납치범을 향해 이렇게 낮게 말한다.
"네가 좋아하는 버본의 원료다."
기절... 박장대소.
미친 듯이 웃었다.
그 지루한 시간 하품을 참아내며, 그래도 일단 돌렸으니 엔딩은 봐야하지 않은가 친구, 하며 서로를 토닥이던 관객에게 기다림의 보답으로 큰웃음이 찾아왔다.
그 후 옥수수만 봐도, 양주병만 봐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옥수수 똥꼬에 꼽고 좋아라 하던 납치범도 웃겼지만 꼼꼼하게 납치범의 취향을 살려 옥수수를 챙겨온 카리스마 컨셉의 주인공의 센스는 더욱 기가막히게 개그적이었다.

이렇듯 나의 에로에로 영상물과의 기억은 항상 개그스러운 시추에이션이 함께했다.
이제는 이 장르에 대해 나름대로 어른의 자세(?)를 갖췄으니, 진지하게 에로에로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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