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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3 <미녀와 야수>, 그것은 어른의 세계 1


봐, 좀 늙었잖아.


디즈니판 동화로 처음 접했던 <미녀와 야수>.
하얀 윗니가 약간 돌출되어, 도톰하고 작은 입술이 도드라져 보이는 디즈니 만화 캐릭터답게 생긴 아가씨, 벨. 뭐 나름 깡따구 있는 아가씨였다.

코찔찔이 당시에 이 동화의 가장 큰 의문점은 이종간의 사랑이 가능한가, 였다.
벨이 과연, 이 야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게 가능했는지, 그러니까 으례 동화적인 환상으로다가, 다른 아가씨들이 왕자님을 만났을 때처럼 가슴 두근거렸는지 궁금했다. 엔딩에서는 그 야수가 멋진 왕자님이 되긴 했지만, 그 과정까지 과연 왕자의 저주를 풀 만큼 벨이 그를 진정 사랑했었을까 의문이었다. 아, 맞다. 이 동화의 저주는 왕자가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야 풀리는 거지... 어쨌든.
코찔찔이는 그래서 이 동화를 보며 한개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짐승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신뢰나 가족애, 또는 연민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서도, 남녀 간의 깊은 '애정'을 나눌 수 있는가, 그것이 과연 가능한 걸까, 하며 양 눈썹 사이에 주름을 잡았던 어린 시절.

그렇다. 코찔찔이는 잘생긴 왕자님이 아니어서 일단 건성이었다. 그리고 실망했다. 일단 모든 동화에서 아름답지 않은 남자 주인공은 건성으로 볼 뿐이다.
미녀와 야수뿐만 아니라 엄지 공주에서 엄지를 찝적대는 온갖 동물들이라든가, 그깟 공 하나 주워줬다고 별 걸 다 바라는 개구리 왕자라든가........
저주든, 태생이든, 짐승화 된 남자와 아가씨들의 진정한 사랑 찾기와 같은 얘기들은 일단은 숨참듯 급하게 휘리릭 넘겨 저주 풀린 모습을 확인만 했다는 거다..

그럼 미녀와 야수는 어떤가.
그나마 멋진 사자다. 사자는 멋있다. 일단 포유류라는 점이 개구리보다는 나았다. 아, 그러고 보니 개구리 왕자의 저주는 참으로 가혹했구나!
그러나 디즈니 동화에서 야수는 늙어 뵈는 호랑이로 괴팍한 느낌의 중년 남자로 비쳐졌다.
게다가 이 아가씨의 주댕이도 맘에 안 드니 남녀 주인공 모두 비주얼이 못 살아주는 판국에, 딸을 팔아먹는 아버지라니... 아, 그래 심봉사마냥 그렇다. 심청이마냥 그렇군.
그래도 이 동화의 강점은, 강한 자를 길들인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개구리 왕자나 엄지공주를 보는 것보다는 괜찮았다.
'사랑'이라는 코찔찔이 소녀의 환상보다는 결코 길들일 수 없는 야수를 길들일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가 된다는 점이 매리트였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여자들에게는 그런 게 있다. 연인에게 단 하나의 유일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열망 같은 거 말이다.
거기에 꿈을 엮어보면, 이런 스토리가 나온다.

1. 그는 권력과 힘을 지녔지만 상처받은 남자다.
2. 그는 거칠고 무자비하지만 상처받은 남자다.
3. 냉정하고 차갑지만 상처받은 남자다. 차가운 도시남자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하겠지....

뭐 셋 중 하나이거나 셋 다 이거나.
'상처를 받았다'는 건, 심리적이든 뭐든간에 숨겨둔 비밀이 있다는 거다. 결코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는 비밀 같은 거.

이렇게 해서 '나'는 그런 남자를 안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자신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달려오는 남자를 갖는 것. 세상이 무너져도 너 하나만은 지킬 것이라고 외치는 남자. 쪽팔리는 말을 열정적으로 마구 뱉어내며 야수처럼 전력질주로 달려드는 남자. 물론 주둥이와 몸뚱이와 대가리는 일심동체. 뭐 이런 거.

그래서 짐승과 아가씨라는 공식의 동화들은 알고보면 로맨스의 전형이다.
뭐, 동화 중 로맨스 전형 아닌 게 어디있냐마는...... 이건 확실히 어른들의 로맨스와 좀 더 가깝다.
어리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남자들의 집착과 거칠고 강한 유전자를 향한 가임여성의 본능적인 욕구.
영화 <스피시즈>에서 외계인 여자가 본능적으로 병에 걸린 남자를 피하고 강한 유전자를 가진 남자에게 뎀비는 현상은 생물학적인 본능이라 이거다.

때문에 이 동화는 어른들의 세계다. 게다가 신데렐라보다는 원초적인 세계다. 그러니까 적어도 15금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재창조되고 있는 것이 또 이 <미녀와 야수>다.

사라코너(린다 해밀턴)가 야수를 길들이는 미녀였던, 시리즈 드라마.



어른이 되면 알게 될거야.
어른들의 말, 하나 틀린 것 없다.
미녀와 야수, 그건 어른들의 세계다. 어른이 되니 나름 상상력이 확대되면서 가슴도 두근거린다.

사춘기를 지나오면, 대부분 소녀와 아가씨들은 미녀와 야수를 아주 깊게 이해하게 된다.
아울러 그녀들은 강한 남자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된다.

소녀시대에는,

백마 탄 왕자님(권력), 야수와 같은 마법에 걸린 남자(힘): 동화를 빙자한 로맨스.

이랬던 것이 조금만 더 아가씨가 된다면,

대기업 회장인 미스터 스미스(권력), 지치지 않는 지골로(힘):
할리퀸 로맨스.

이렇게 구체화 된다.

기본적으로 본능은, 지적 지수보다는 일단은 육체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것에 매료되기 쉬운 법이다. 나는 Madonna의 material girls도 좋아한다.
그러니 우리가 쉽게 그것에 넘어가는 것에 수치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건 암사자 무리가 더욱 강한 수사자에 의해, 자기 새끼의 아비가 쫓겨나면 새로운 수사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니 썩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정은 정말 슬퍼서 보고 싶지 않다.
인간도 별 거 없다. 기본적인 건 다 거기서 거기인 거다.
난 이런 자연스러움이 좋다, 이거다!
어른됐다고 동화 우습게 보지 말자. 다시 보자, 동화!
그래서 선생님들은 책을 세 번 읽어야 한다고 하시는 거야.



<200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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