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7년 전인가, 친구가 한참 힘들던 시기에 별 도움도 못 주고 이렇다할 위로도 못해주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친구가 예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무슨 좋은 일이 생겼나 싶어 물었더니,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꼭 한 번 읽어보라며 권해줬었드랬다.
잠깐 친구 책을 읽어보다가, 나도 한권 소장해야겠다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까묵고 지냈더랬다.
그러다가 작년 쯤, 다른 친구 하나가 이런저런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 자주 내게 고충을 토로하곤 했는데, 책을 읽어보거나, 불교니까 절에 가끔 다녀오는 건 어떻겠느냐며 이야기 해주곤 했다.
그러고 며칠 후,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전화한 친구는,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고 있다며, 내게도 권했다.
그래서 예전 일도 떠올라, 이번에는 꼭 사서 읽어봐야겠다 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스님께서 입적하셨다.

생각난 김에 이번에는 꼭 <무소유>를 사려고 온라인서점을 뒤지는데 죄다 품절이다.
스님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분간 스님 저서 찾는 사람들이 많겠구나 싶어서, 급한 것도 아니니까 기다리자 했는데, 어이쿠! 스님 유언에 따라 모든 저서를 절판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법정스님의 저서를 출판하는 출판사들은 스님의 유지에 따라 절판하기로 뜻을 모았다.

아이쿠! 그러심 안됩니다!

일찍이 절판된 책 때문에 맘고생 좀 해봤던 쿨에드는 이건 아니라면서 안타까워 했다.
지금껏 내가 구하고자 했던 절판본들은 뭐 세계적으로 구하기 어려운 희귀본도 아니요, 우리나라 작가의 희귀본도 아닌, 단지, 상업적, 정서적 이유 등으로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었다.
이런 걸 희귀본이라면서 원가격의 몇십 배로 불려 판매하는 작자들이 재수가 없었더랬다.
그들은 소개글에, 자신을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뻔뻔한 문장으로 치장한 장삿꾼들이었다.
번역본들이 이런 사태인데, 법정스님 저서는 오죽하랴.

이제 더러운 장삿꾼들이 판을 칠 것이 분명하다.
이미 경매에서 몇십 만원으로 경매가가 치솟고 있는 가운데, 어떤 xx가 9억원이라는 병신같은 가격을 책정해서 경매에 붙였다.
뭐, 수익금은 좋은 일에 쓰겠다고?
사람들 말마따나, 좋은 일에 쓰려면 도서관이 기부하면 될 일이다.

하여간, 모든 걸 버리고 떠나신 법정 스님의 깔끔한 마무리는, 현세의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간과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뭐 큰스님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리기에는 어차피 나도 너도 다 모자란 건 매한가지.

나도 책욕심이 많아 웬만하면 책은 빌려 읽지 않는 편인데, 사태가 이런 지경이니, 아우, 좀 질린다.
분명 다른 방법으로든 스님 저서를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니까, 정 읽고 싶으면 친구한테 빌려 읽을란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집 두 권이 출간됐다.
그 작품집 두 권에는 내가 너무 기다리던 69년도판 가와바타 야스나리 전집에 수록된 소설들이 실려있다.
이것봐라. 번역본은 기다리면 언젠간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난 이제 절판된 번역본에 말도 안되는 가격을 책정해 놓은 책장사치들의 유혹 따위 무시할 수 있다.
물론, 싸게 내놓은 중고 번역본이라면 환영이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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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포기한 책이었다.
그저, 찔끔찔끔 나오는 야스나리 단편집을 선별하여 구입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야스나리 단편집은 다른 문호들의 단편집 처럼 중복이 많아 아무리 고르고 골라도 여러 번의 중복을 피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포우의 단편선이 나올 때는 정말 환호하며 기뻐했었다.
맨 그 밥에 그 나물로 같은 것이 여러 번 중복되어 다양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 전집>이었다.
이 책은 친구 언니의 책이었다. 이 책을 빌려봤을 때, 내게 야스나리는, 여느 사람들처럼 <설국> 작가일 뿐이고, <설국>은 어쨌든 청소년이 읽어야 하는 명작 중 하나였고, 왠지 항상 <오싱>과 헷갈렸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걸작선을 읽고 나서는, 더 이상 <설국>과 <오싱>을 헷갈리지 않았다!(헷갈렸던 게 이상한거야;;;)
걸작선은 단편집이다. 이것은 6권짜리 전집이었는데, 내가 읽은 것은 그 중 세 번째 책이었다.
69년도 판답게 세로줄에 한문이 25%를 넘게 차지한 책이다. 아, 한문 까막눈인 나로서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였다.
그런 난제(?)에도 불구하고 난 이 첵을 사랑하고 말았다. 한달을 빌려 읽으며 정말 어떤 작품은 두세 번 다시 읽고 또 읽기도 했다.
칼날처럼 날카롭고 유려하며 섬세한 표현과 문체. 분명히 <설국>도 그러했을 텐데, 난 왜 여태껏 몰랐을까? 왜 난 <오싱>과 <설국>을 헷갈렸던 것일까.
책 욕심이 많던 난 눈이 뒤집혀서 그 낡고 오래된 책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 책을 내게 팔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며 친구 옆구리를 찔러댔다.
그러나 '택도 없는 소리'였다. 친구 언니는 유학가면서 그 책도 가지고 갈 정도로 그 언니에게도 애착이 남다르던 책이었다.

그랬다. 그래서 언젠가 나오지 않을까, 하며 생각날 때마다 신간 소식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헌책방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하게 발견했다. 바로 내가 읽었던 세 번째 책.
이렇게 기쁠 수가!
40년이 넘은 책이라, 상태는 그닥 좋지 못하다. 종이 변색은 예상보다 심했고, 그래도 변색된 것에 비해 구김이나 넘긴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_=;
케이스를 강조해서, 케이스가 상당히 깨끗한가 했는데.. 케이스는 완전 낡고 낡은 걸레같았다.
음, 보면서 막 병균 옮을 거 같아서 손가락 끝으로 집어서 재활용통에 넣었다.
하드커버임에도 많이 낡았다. 뭐랄까 습기에 절은 것 같이 흐물거리는 것이... 이것도 병균 옮을 거 같아서, 일단 베란다에 놓아두었다.
책을 구한 건 기쁘지만, 뭔가 조치가 필요할 듯. 시간이 되면 인쇄소에 가서 제본을 다시 할까 생각 중이다.
전권을 구입하고 싶지만, 책 상태를 보아하니, 조금 망설여진다=_=;
일단 이 책 구제방법부터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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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 : 이눔의 해적판들! 구글 검색에 앤라이스 작품 - Beauty's Punishment('화석의 나라' 원제)로 검색된다는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건 10년도 후딱 넘은,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친구가 선배에게 빌린 책을 가지고 와서 둘이서 침대에 누워 한 페이지씩 큰 소리로 읽으며 막 웃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책은 친구와 다정하게 웃으며 읽을 책은 아니다.
아나이스 닌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이라면 이유를 알것이다. 그리고 친구와 침대에 누워 큰소리로 읽었다는 부분에서 나쁜 취미를 가진 커플이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우린 커플이 아니다. 게다가 건전하지는 않지만 나름 순수하고 신선한 꽃처녀들이었다.

어쨌든, 당시 아나이스 닌은 이름마저 생소했다.
우리가 <화석의 나라>를 읽었던 이유는 당시에는, 그리고 지금도 찾아보기 힘든 에로티시즘 때문이었다. 마치 동화처럼 시작하지만 내용은 20금 정도의 성인용이었다.
그러나 나긋나긋 부드럽고 섬세한 문장은 단순히 포르노라고 치부하기에는 아까운 소설이었다.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다음날 원주인에게 돌려줘야 해서 많이 아쉬워 연장을 청해보았지만, 까탈스러운 원주인은 다시 빌려줄 생각이 없었다. 뭐, 책을 빌려올 때도 딱 하루 기한이었으니, 좀 팍팍한 책주인이었다. (그 맘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잊혀진 그 책은, 몇 년 전 우연찮게, 케이블에서 방영한 <헨리와 준>을 보게되면서 생각이 났다. 아나이스 닌과 정말 똑같았던 마리아 드 메데이로스(정말 매력적인 배우; 펄프픽션에서 브루스 윌리스의 연인으로 나옴). 이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때는 아나이스 닌과 <화석의 나라>를 연관시키지 못했는데!
그래, 그 작가가 아나이스 닌이지.

그리고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 책을 찾아 헤맨 덕에 몇 권의 책을 발견했다. 제목으로 봐서는 그 소설인지 아닌지 알수 없었다. 게다가 아나이스 닌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그나마 있는 정보로는 알길이 없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 생각은 좀 나겠지만, 도전해보자 싶었다.
가격은 중고지만 원가보다 높다. 이런 책들은 대부분 다시 출간되기 어려운 책인 경우가 많다.
1997년에 나온 책이니까 어쩌면 다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살짝 망설이다가, 마냥 기다려도 재출간되지 않는 래이 브래드버리를 생각하니, 놓치면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래서 급히 구입을 추진했지만 불발됐다.(망설이는 동안 책이 판매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 발간한 출판사에까지 문의를 넣었지만 역시 불발.
그때만 해도 찾아다닌 희귀본 득템에 모두 실패한 터라 의욕을 잃고 잠시 중고책 사냥을 중단했다.

그리고, 올해 콜린윌슨의 <잔혹> 초판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아나이스 닌의 <화석의 나라>.
느낌이 왔다. 내 기억 속의 그 소설은 이런 제목이 어울렸다.
그래서 급히 찜하기 위해 판매자에게 문의를 넣고 바로 입금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절판된 책 운이 그닥 좋지 않은 나로서는 오랜만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나이스 닌은 돈을 벌기 위해, 남자들이 읽을 포르노 소설을 썼다고 누군가 비아냥거린 글이 떠오른다. 아나이스 닌의 재능이 그렇게 희생됐다는 점에서 안타까워하는 글이었지만, 내 생각에는 나름대로 꽤 멋진 일을 해낸 것 같다. 진실이 어떻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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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미덕의 불운>

Sundry 2008. 11. 13. 20:13

아주 오래 전에 빌려본 책인데 친구는 책을 분실했다고 한다.
문고판 사이즈에 두께도 무척 얇아서 12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이며 무슨 해적판 음란서적도 아닌 것이, 역자 연혁이라든지, 후기라던지 이 따위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기억을 못하고 있는지도....)

허탈하고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내용이 변태스러워서가 아니다.
사드의 '악명'에 비하면 소프트한 편이었다. 물론, 당시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던 본인에게는 살짝 감당하기 어려운 점이 있긴 했지만서도......

내용은 이러하다.
주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일단 책을 읽은지가 10년이 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쥐스틴과 줄리에뜨, 두 자매는 부모가 죽자 약간의 유산을 물려받는다.
그 유산을 쥐고 두 자매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언니인 줄리에뜨는 무척 자유분방한 아가씨로, 방탕하고 자유로운 삶을 산다.
반대로 동생인 쥐스틴은 착하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로 착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두 자매의 인생은 일상적인 설정을 뒤집는다.
착하고 아름다운 쥐스틴의 인생은 처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반면, 줄리에뜨는 그 방탕함과 자유분방함에도 아주 순탄한 인생을 간다. 단순히 순탄만한 게 아니라 정말이지, 그렇게 막살아도 대단한 꽃길이었다.
언니는 백작인지 남작인지, 어쨌든 귀족 부인이 되고, 그러는 동안 착하고 아름다운 쥐스틴은 세상의 모든 악행을 경험하게 된다. 갖은 고문과 학대, 성적인 폭력.. 그렇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처참한 인생을 산다.
그리고 두 자매는 다시 만나게 된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쥐스틴을 언니 줄리에뜨는 평생 보살펴주겠노라며 동생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자, 여기까지 본다면, 이건 그나마 아주 일반적인 엔딩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 된다면 사드가 아닌 것이다! 암만!

두 자매의 만남. 처참한 꼴이 되었지만 동생을 사랑하는 언니를 만났으니, 이제 행복한 엔딩이 남았구나, 하는 독자는 이어지는 마무리에 충격을 받는다.

쥐스틴은, 줄리에뜨의 보살핌에, 자신에게 이런 행운이 있을 리가 없다며 괴로워 하더니, 어느 폭우가 쏟아지는 밤, 밖으로 뛰쳐나가더니, 이건 악마의 농간일 거라며 반미치광이가 되어 절규를 한다.
그리고는..... 화려하게 번개에 맞아 사망한다.

맙소사!

사필귀정이라고? 권선징악?
사드는 바로 이 오래된 정설에 엿을 먹이고 있는 거다!

맞다.
이 부조리함. 18세기에도, 그리고 지금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드는, 세상은 꿈결처럼 아름답고 선하지 않으며, 그런 곳에서 미덕은 악운을 부를 뿐이라고 말한다.
사드는, 아이처럼 순진한 18세기의 어리숙한 이들을 향해, 잔인한 어른이 되어 경고하는 것 같다.
아니, 지금에 와서도 그 경고는 유효하다.

이러니 사드의 저서가 18세기에 얼마나 사회적 충격이었겠는가. 아니, 뭐 지금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서도.....
사드의 저서들은 사회 통념에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단지 그 강도가 심하고, 표현이 과격할 뿐.
뭐, 이렇게 말하지만 사드의 책이라곤 이거 하나 읽어봤다=_=;

그러고 보니, 이 책 내용을 생각할 때면, 고등학교 때 몰래 읽던 데카메론이 매번 생각이 난다.
울 오라버니가 졸업하면 읽으라고 못 읽게 해서 더욱 보고 싶었던 데카메론은, 예상과 달라 오라버니에게 배신감을 느꼈더랬다.
물론, 데카메론은 지금도 책장에 꽂혀있다!
예상보다 흥미로웠던 책들이라, 가끔 데카메론을 볼 때면, 이 책이 생각난다.

책을 구하려고 보니, 이거 초희귀본이란다.
래이브래드버리 단행본이나, 앙드레지드의 사전꾼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편선 같은 거.
이런 책들은 좀 다시 나와도 될 거 같은데..........;

희귀본 얘기가 나오면, 잃어버린 책들 때문에 가슴이 쓰리다. ㅠㅠ
특히 멜랑꼴리의 묘약! 이 책을 잃어버린 후부터 난 누구에게도, 웬만하면 책 안 빌려준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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