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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x줄리엣 OP <祈り ~You Raise Me Up~> - 박정현
워낙 유명한 곡으로 시크릿 가든의 뢰블란이 아일랜드의 민요를 편곡한 이후로 여러 번 커버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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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데이즈>에 나오는 애들과 같은 16세 청소년의 사랑을 그린 애니메이션 <로미오x줄리엣>.
<스쿨데이즈>감상 후 생긴 찝찝함을 상큼하고 촉촉하게 씻어 준, 심신정화용으로 우수한 애니메이션이다. 같은 16세지만 이렇게 다르다. 시대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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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면 입 아픈 셰익스피어의 세계 유산급 희곡이 원작이다. 가나다만 할 줄 알면 아는 게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제대로 된 희곡을 읽지 않았어도, 로미오와 줄리엣 줄거리 모르는 이 없다.
세계 유산급 명작이다 보니 로미오와 줄리엣의 오마주는 지금도 수많은 창작품에 나타난다. 그래서 웬만하면 신선하지도 않은 소재다.
그래서 애니 <로미오x줄리엣>은 작화를 기대했을 뿐이다. 세월이 지나도 그 로맨틱한 설정을 변함없이 심금을 울리니까. 아울러 복창도 터지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좋아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별로였다. 아니, 셰익스피어 작품 중 제일 별로였다.
수줍은 소녀 시절, 그 유명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후 운명적 사랑을 꿈꾸던 친구들 사이에서, 애절한 두 청춘의 운명보다,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그들의 행보가 얼마나 많은 민폐를 끼치는가에 중점을 두고,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이기적이다>라는 인생 다 산 여자 같은 감상을 쎄웠다.
이미 난 눈치 없는 왕자새끼 배를 쑤시지 못하고 물방울이 돼버린 한심한 <인어공주>를 위해, 그녀가 일찌감치 바다로 돌아가 퀸오브씨가 되어 미모와 권력을 손에 쥔 그녀에게 홀딱 반한 왕자를 희롱하는 내용의 제2 창작에 몰두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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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로미오x줄리엣>이 기존 로미오와 줄리엣과 다른 건, 뚜렷한 선악 구도다.
원작에서 두 집안은 원수지간이지만, 누가 더 잘났고 못났고가 없다. 그런데 애니에서는 다르다.
로미오는 네오베로나의 정권을 잡은 몬태규 집안의 귀한 아들로 곱게 자라, 마음은 따뜻하나, 아버지에 순종하는 소년이다.
그에 비해 줄리엣은 로미오보다는 스펙타클한 시절을 보내는 중이었다. 십여 년 전 몬태규에 의해 가족과 가신들이 모두 살해되고 겨우 목숨을 건지고, 이유는 알지 못한 채 숨어 살면서 몬태규의 압정에 신음하는 민중을 돕기도 한다.
그러던 중 뭐 수순대로 로미오와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며 두근두근 막 첫사랑의 꽃을 피울 찰라. 16세가 되던 날 줄리엣이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이 어찌 됐든 네오베로나를 구할 구세주와 같은 존재라는 부담스러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엄청난 진실을 알게 된 줄리엣이 그 크기와 중량감을 미처 가늠하기도 전에 그녀는 비극적 운명으로 끌려간다. 아마도 그중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사랑하는 로미오가 자신의 부모를 죽인 몬태규의 아들이라는, 말하자면 원수집안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줄리엣의 사정을 모르는 어른들은, 16세가 된 캐플럿 가문의 유일한 혈육이자 네오베로나의 정통성에 부합되는, 그래서 몬태규가 눈이 시뻘게지도록 찾아 죽이려 드는, 줄리엣을 중심으로 캐플럿 가문의 옛 영광을 되찾고 네오베로나를 탈환하기 위해 봉기한다.


붉은 옷의 가면을 착용한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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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로미오x줄리엣>에서 줄리엣은 기존 공주님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로미오쪽이 공주님이랄까.
줄리엣의 생존을 알게 된 몬태규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고, 로미오 또한 그게 줄리엣이라는 걸 알고 순진하게도, 아버지를 설득해 막아보려 애쓰지만 통할리 없다. 결국 둘이 사랑의 도피도 결행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붙잡힌 로미오는 탄광으로 쫓겨가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별수 없다. 어른들의 더러운 세계에 휘말린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다. 그것도 대단한 용기였다고 본다.
또한 줄리엣은 자기를 위해, 캐플럿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동료를 배신할 수 없는 소녀였다. 제대로 싸가지를 갖췄기에 정말 맘에 들었지만, 그냥 그대로 숨어버리지, 하는 맘도 있었다. 뭐, 뻔히 그러지 못하다는 걸 알기에 더 그런 맘이 들었겠지만.


두 사람의 짧지만 행복했던 시간

탄광으로 쫓겨난 로미오도 성장한다.
로미오는 격정적인 왕자님, 혹은 기사는 아니다. 그는 온화하고 다정한 소년이다. 그의 따뜻함은 주변 사람들을 감화시킨다. 그렇지만 이 온화한 소년은 자신이 사랑한 연인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망설임도 없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로맨틱한 감정인가.


티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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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볼트는 로미오의 부족한 카리스마를 메우는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의 특징상 첫 등장 시기가 늦으며, 등장 횟수가 많지 않다. 거기에 하얀 용마를 타는 로미오와 달리 그는 검은 용마를 탄다.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원하는 로미오, 줄리엣과 달리 티볼트는 캐플럿의 가신들과 마찬가지로 급진파다.
거기에 출생의 비밀. 미스테리한 인물이며, 검술도 끝내준다. 거기에다가 검은 머리 미남에 말수도 적고 직설적이다.
그의 역할은, 마치 어린 날 처음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소재를 접했던 내가, 당시 그 주인공들에게 하고 싶었던 것을 대신해주는 느낌이다.
그들에게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운명의 안타까움을 이해하고 있다.
티볼트 외에도 줄리엣의 동료는 그들의 운명의 잔혹함을 알고 안타까워한다. 어른들의 대의명분을 16세의 어린 소년과 소녀에게 짊어지게 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모를 리가 없다.

이러한 역할을 대신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가 있는데 그가 바로 윌리다.
캐플릿 가문의 생존자와 줄리엣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고 그들의 울타리를 대주는 집안의 아들인지 조카인지로 등장하는 윌리는, 극장과 극단을 운영하는 작가다.
그렇다. 이름에서 알다시피, 그리고 배경에서 알다시피, 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모델이다.
그는 줄리엣과 로미오의 운명을 희곡으로 만들고 줄리엣의 사랑을 응원한다. 줄리엣 주변의 어른 중에 아마도, 줄리엣의 사랑을 대놓고 응원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
민중을 위하는, 네오베로나를 위한 일이라며, 줄리엣을 압박하는 어른들이지만, 까놓고 캐플릿 가문에 충성하고 몬태규에게서 권력을 강탈당하거나, 제거된 자들이 모여 일으키려는 정치적 반정일 뿐이다.
어쨌든, 몬태규가 집권한 네오베로나는 감시와 처벌만이 가중되는 시대이긴 하다. 민중들은 이런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네오베로나의 중심이 되어 온 캐플릿 가문의 혈통이 필요했다. 그래서 캐플릿 가문과 함께 봉기한 이들은 대중의 바람을 얻어 몬태규의 압정에 신음하는 백성을 구하겠노라 외친다.

*
결말은 중요하지 않다.
두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어쭙잖게 해피엔딩이 될 리도 없다.
그러나 결말을 알기에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과 자신들의 운명을 바꾸려는 노력이 더욱 아프고 애틋하다.
거기에 오프닝 곡인 박정현의 <You Rise Me Up>은 더욱 감동을 배가시킨다. 뉴에지풍으로, 뉴에이지풍답게 드라마틱한 곡이다.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매번 반복되는 오프닝을 빠지지 않고 본 경우는, 지금까지 <로미오x줄리엣>뿐이다.
마지막 회 이후 다시 오프님을 보면 지금도 콧끝이 시큰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 나 아직 그렇게 감정이 마르지 않았구나, 새삼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로미오x줄리엣> 오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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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향림 - 찻집 아가씨



*
오랜만에 디카를 꺼내서 사진 좀 찍을라 했더니, 카드리더기도 말썽. 또다시 컴터 파워 때문에 본전 생각. 아놔, 컴터조립가게 아자씨 진짜 저주!


올만에 사진 좀 찍을라 했더니, 야메 밧데리 하나가 맛이 갔다. 역시 정품을 써야 한다.

*
새로 주문한 커피가 도착했다.
이전에 탄자니아AA+는 핸드드립이라는 걸 첨 해보는지라 대충대충이어서 제대로 즐기질 못 했더랬다. 그래도 워낙 향이 좋기도 했고 간혹 운좋게 그럴싸하게 나올 때면 딱 내 취향인기라.
핸드드립 법을 대충 훑어보고서 시작한 막드립.
그러나 열심히 물줄기는 돌려주지만 방법은 거꾸로요, 굵기는 제멋대로에, 그래도 들은 풍월이 있어 가지고서리 가늘게 뽑을라고 조절해보지만, 부르르 떨리는 손목에 물줄기 뚝뚝 끊길 뿐이고.
뜸 들이는 시간 못 기다려 거품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물을 디립다 부어버리거나, TV보다가 깜빡 잊어먹기를 밥먹듯 하고.
게다가 생활자답게 아깝다며 액기스 다 뽑아낼 심산으로 맹탕 올라올 때까지 물을 붓는다.
그리고는 쓴맛 신맛 울컥 우려낸 커피 맛에, 원래 이 커피는 이런 맛이라며 자위질해댔다.
그렇게 막드립을 해대며 <우려낸> 커피 맛은 미묘했어도, 넘치도록 물을 가득 부어줄 때 황금색 거품이 올라오면서 향기로운 커피향이 집안 가득 퍼질 때는, 여느 카페 안 부럽다, 나는 이때가 가장 좋다며 잘난척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진하고 쓴 맛이 강한 커피 맛은 원래 그러려니 하며 자위질로 넘어가기엔, 내 혓바닥도 나름 커피 좀 마셔본 혓바닥이라, 드립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드랬다.
이런 내 막드립을 들은 옆집 b급마쵸씨가 그게 뭐하는 짓이냐며, 제대로 된 드립 법을 알려주었지만, 수중에 남은 커피가 없더란 것이다.
그래서 주문한 것이, 만델링.


이번엔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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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 아 그래 이 커피가 무지 고소했던 기억이 나는 기라. 그래서 즐겨 마셨더랬다.
뭐, 카페에서 메뉴판에는 흘깃 눈길만 주고 다른 건 상관없다는 태도로(나도 허세 좀 부려보고 싶었다!) 주문해서 즐기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리긴 했다.
이름이 기억 안나서 자바를 선택하는 확률이 50~60% 정도라, 이런 악순환을 멈추고자 동석한 친구랑 각각 자바, 만델링을 주문하곤 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한 후에야 만델링이라는 이름을 외웠다는 바보같은 얘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매번 가던 카페가 대부분이었지만, <늘 마시던 거>라고 할만큼 재수없진 않았다! 아니, 한 번쯤 해보고 싶긴 했지만.... 어쨌든, 그랬음 아직도 이름을 못 외웠을 거다.

*
그런 사연으로다가 만델링이 왔다. 아, 이 향기로운 냄새, 아니 향!
아울러 서비스로는, 내가 초콜릿 향을 좋아한다는 걸 아는 건지, 예맨 모카가 딸려왔다.
상자를 열고 함께 주문했던 필터와 커피를 꺼낸 후, 주전자를 찾아 헤매기를 2시간. 역시 우리 엄니가 숨기면 아무도 못 찾는다.


안녕하세요, 스댕이에요. 양은이들 보다는 꽤 값이 나갑니다.

그렇다. 주전자다.
은빛 광채가 나는 <고급 스테인레스>의 멋들어진 것도 아니며, 앤틱한 분위기의 동(銅)으로 만든 드립포트 같은 것도 아니다.
그냥 스댕 주전자다.
없으면 없는데로 구색만 맞으면 된다! 그래도 컵으로 드립다 부어 내리는 거보다는 낫지 않은가!

*
스댕 주전자도 찾았고 하니 새로운 맘으로 핸드드립 준비를 했다.

좀 뿌옇고 어두운 건 리더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핸펀으로 찍은 거. 그나마 나은 사진으로다가 골랐다.


플라스틱 3-4인용 드리퍼에 1-2인용 필터 착용. 아씨 따지지 말어. 비루한 도구라도 구색만 맞으면 되는 거다!


스댕 주전자의 막드립.


살짝 적시기.


뜸 들이기.


두 번째 드립.


거품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중. 아 열라 오래 걸려....


마지막 가득 붓기. 물줄기가 굵다보니, 순식간에 차올라 버린다능.


거의 다 됐다!



물 붓는 중에는 도저히 찍을 수  없었다. 담에 또 이 오지랖을 부리게 되면 삼각대를 써야지;
이상 어설픈 막드립있었음.

*
일반 주전자의 약점은 물줄기가 굵다는 거다. 굵기 때문에 천천히, 우아하게 돌리기란 어렵다.
나름 스댕 주전자 주댕이로 흘러나오는 물줄기를 최대한 가늘게 만들려고 애는 쓰지만 뚝뚝 끊어지다가 왈칵 쏟아지는 게 대부분이고, 그런 사이에 부드럽고 아름답게 물줄기 돌리기란 꿈도 못 꾼다. 게다가 기본 사양으로다가 수전증은 나도 어쩔 수 읎다.
드립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일정한 굵기의 가는 물줄기라지만, 어차피 이런저런 조건으로다가, 난 그냥 굵은 물줄기와 막돌리기로 승부 본다.
그래도 이게 물줄기의 굵기, 속도 등에 따라 맛이 상당히 달라진다고 한다. 봐주는 거 없다. 커피는 생각보다 까칠하시다.
그렇다고 비싼 드립포트를, 이 내가 살 턱이 있느냐!

*
그래서 옆집 b급 마쵸씨가 알려준 생활자들을 위한 팁. <사진은 b급마쵸>


안녕하슈. 사연 많은 양은이라지요. 난 좀 빅한 사이즈라오.

이거다. 양은 주전자. 대부분 막걸리를 담곤 한다.
막걸리가 담겨있다보니, 옆구리가 움푹 팬 모양이 익숙하다.
불에 올려놓고 끓이는 용도가 아니니까 이 정도면 된다.
그렇다. 이 양은 주전자를 <양은 드립포트>로 커스터마이징 하는 거다.


주둥이를 뺀찌로다가 쥐어 준다. 꽤 귀여운 주댕이다!

양은 주전자 주둥이 입구를 펜치로 쥐고 살짝 눌러 지름 0.5cm 미만으로 모아주면 된다.
사진은 주전자의 크기가 좀 큰 관계로 주댕이가 좀 넓다. 이럴 때는 사진처럼 주둥이 아래쪽 끝을 살짝 눌러 물길을 맹글면 되것다.
그렇게 해서 물을 부어보면,


이것이 <양은 드립포트>다! 야, 몇만 원짜리 드립포트 필요없다!

그럴싸 하다!
이것이 바로 생활자의 지혜가 아니던가.
맛에서도 차이가 난다고 하니, 나도 양은 주전자 사서 <양은 드립포트>로 커스터마징 하여 더 나은 커피를 마시리라. 나는 좀 스몰한 걸루다가 살 테야.


다른 건 몰라도 드립 횟수와 뜸 때를 알고 하니까 저번보다 훨씬 맛이 좋아졌어.

*
茶道라는 게 있듯이, 커피든 홍차든 녹차든, 차를 마시는 것 자체가 일종의 미학인데, 그래서 그 미학이 욕심나지 않다면 고짓말이다.
스테인레스든 동이든 은이든, 늘씬한 아가씨 팔같은 주댕이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커피를 적시며 향기롭고 풍성한 거품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건 스테인레스 드립포트. 같은 스댕이라도 포스가 다르다. 은일지도...

따뜻하게 데운 도자기 드리퍼나, 원뿔 모양의 융으로 만든 거름망과 적당한 온도를 알려주는 온도계나 원두를 갈아주는 앤틱한 모양의 밀도 그렇고. 난 라떼를 좋아하니까 에어로치노나, 핸드드립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사한 에스프레소 머신이도 갖고 싶고, 욕심을 내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섬세하지 못하니 바리스타 할 성격은 못 되고, 뭐, 이눔의 수전증으로 택도 없을 테고. 그렇다고 취미로 구색을 갖출 만큼 홀릭한 것도, 부지런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커피는 사랑하니, 누가 내게 매일 이런 향기로운 커피를 아름다운 모습으로 핸드드립 해준다면야 얼마나 좋을까마는, 없으니 넘어가고.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딱 하나 가지고 싶은 건 있다.
바로 텀블러.
내껀 너무 오래되고, 아웃도어용이라 열라 심플하다. 아놔 심플 좋아하지만.......


한 9년 사용한 내 텀블러.

모양새만 봐도 멋이라곤 없다. 그저 기능만 강조한 스탈.
아웃도어 냄새가 좀 나고, 몸체는 뜨거워서 손잡이가 달려있다.
가끔 엄니께서 물에 담그셔서 물 빼느라 마구 흔들어주어야 했으나 여전히 성능에는 이상이 없다.
어쨌든 참 튼튼하긴 하지만, 나 좀 예쁜 걸루다가 텀블러 가지고 싶다.
라떼로 많이 마시기 때문에 좀 큰걸루다가.
신지카토에서 나온 베어시리즈가 맘에 들지만 280ml라 좀 작다.
좀 큰 거는 선택 기준이 좁아 20% 아쉬운 맘.

*
어쨌든, 갓 내린 커피를 낡은 텀블러에 담아, 사람 좋아보이는 팻 매스니나, 까칠한 키스 자렛도 좋고, 박향림도 좋다. 요즘은 옆집 b급마쵸씨가 선곡한 서양까페음악을 들으며, 창으로 들어오는 사기성 햇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책장 앞에 앉아 책을 꺼냈다가 다시 정리하는 오덕질에 심취하는 게으름뱅이 시간이 난 참말로 좋다.

이게 말하자면 야메 다방이라는 거다.

그 찻집 아가씨는 곰보에 짱아찌 코지만,
마음은 비단결에다가 헤죽헤죽 웃는 입술은 앵두란다.
아이구 좋다~







AND


<스포일러 알게 뭡니까>


*
히데노리의 연애물은 묘하게 리얼해서 사람 속을 제대로 긁어대는 매력이 있다.
그 중 <섬데이>는 주인공의 취직 분투기 같은 거다. 아울러 연애 삽질기이기도 하다.



*
주인공 카라사와는 여친 에리카와 오래된 연인으로 공인 커플이다. 이미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운 여친에 비해 카라사와는 별 생각없이 지내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초반에 미적미적거리다가 에리카에게 추월 당한다.
이 찐따같은 새끼는 자신이 뒤쳐지고 있다는 사실에 초조해한다. 게다가 에리카와 스스로 비교하여 땅을 파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취업 준비생인 마이와 알게되어 공감대를 형성하더니, 이 씹새가 훌러덩 마이랑 자는 것이다.
마이는 카라사와에게 여친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난 두번째라도 괜찮아>라는 대사를 날린다. 그리고 카라사와는 돌파구를 찾듯 넘어간다. 이후로 마이를 취업 동지라며 에리카에게 둘러대고, 뒤로는 바람을 피워댄다.
카라사와가 두 여자 사이를 오가는 중에, 에리카와의 관계를 지키려했던 마지막 마지노선은, 마이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이지 않은 거였다.
그러나 결국 그 선이 무너지고, 그러자마자 카라사와새끼는 막장으로 치닫는다.
카라사와의 마음이 자신에게 기울었다는 걸 안 마이는, 믿는 구석이 있으니, 당당하게 에리카앞에 나타나 카라사와를 만나기도 한다.

카라사와가 마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당연히 에리카와의 틈은 점점 벌어진다.
마이의 등장에 불안감을 느낀 에리카는 카라사와의 변심을 눈치채지만, 그에 대한 미련으로 상처가 깊어짐에도 그를 놓지 못한다.
에리카의 불안을 감지하고 긴장하지만 우유부단한 카라사와는 결국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
카라사와는 아무런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저 도망가기 급급했다.
그리고는 가장 최악의 방법으로 에리카를 상처입힌다.

세상에 이렇게 더러운 경우를 봤나! 저 난장판을 보라지.


비오는 날 취업 설명회에 다녀와 에리카에게 흠뻑 젖은 양복 다림질을 부탁하고 돌아간 카라사와는 자취집에 마이를 불러 어른들의 유흥을 즐긴다. 아씨발놈
당연히 그걸 모르는 에리카는 내일 입고 갈 그를 위해 양복을 들고 그의 자취방에 간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두 연놈을 발견하고 만다.


이런 새끼를 용서할 수 있어?

아 진짜, 카라사와새끼가 양복을 에리카에게 맡기고 가는 순간부터 에리카가 두 사람을 발견하는 장면까지, 어찌나 복창이 터지고 열이 받던지! 뻔뻔하고 뻔뻔한 새끼, 내가 달려가 아구창을 다 날려주고 싶더라.
배신과 기만. 그녀에게 카라사와새끼가 얼마나 잔인한 짓을 했는가.

그리고 며칠 후, 카라사와는 에리카를 불러 헤어지자고 말한다. 뻔뻔하게!
물론 에리카는 이별식의 대미로 카라사와의 뺨을 올려부치고 떠난다.



이별 후, 카라사와는 에리카와 함께 했던 물건과 흔적을 깨끗하게 치워버리고 마이와 정식으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
뭐, 연애라는 게 늘상 하나가 끝나야 다른 하나가 시작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 과정에 기만과 배신이 있었다는 점에서 용서가 안되는 거다. 게다가 얼마나 치졸하고 옹졸하고 우유뷰단했던가!
카라사와는 마이에게 헌신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더러워서, 울화가 치밀어 그 부분은 대충 훌렁출렁 넘겼다.

그러다가 마이의 전 남친이 나타난다. 물론 마이는 자신이 예전에 불륜 상대가 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이 전 남친이 바로 그 유부남이다. 이 새끼도 어찌나 찌질한지.....
마이는 전 남친에게 이리저리 마구 흔들리더니, 결국 카라사와를 찬다.


마이에게 차이기 직전. 비도 온다.

선택받지 못한 카라사와는 강한 척 허세 작렬하며 오히려 마이를 위로한다. 야 웃겨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 밤, 차인 카라사와의 청승맞은 모습을 보니 속이 다 후련했다.
그러니까 넘의 가슴에 대못 박고, 넘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 제눈과 가슴에도 피눈물 나게 되는 거다.


이후 카라사와는 정신차리고 열심히 취업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잡아 성장해 간다.
그러던 중에 옛 여친이 너무 그리운거라. 이 개색히. 뭐 이딴 개자식이 다있나.
그나마 카라사와는 자신이 얼마나 뻔뻔하고 웃기는 새낀지 알고 있다. 그런데도 계속 에리카에게 기대게 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에리카는 어찌된 게 그 개자식 전화를 잘 받아주고, 걱정까지 해준다.
뭐 순수하게 친구 관계인 것처럼 각자 그렇게 자위질을 해대는데, 결국 두 사람 모두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여기서 카라사와는 에리카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죄책감에 쉽게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자신이 제대로 취업이 되고 성취했을 때 프로포즈하겠다고 결심한다.
뭐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카라사와는 대기업 취직을 발로 걷어차는 대단한 전설을 만들고 취업에 성공할 뿐더러, 옛사랑을 다시 찾기까지 한다.

*
에리카와 다시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카라사와의 모습과 각오는 좋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에리카의 태도는 의문이 든다.
에리카는 마치, <날 데리러 와요> 하듯이 손 내밀어주기만 기다렸다는 거다.
보는 내가 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쉽게 그에게 다시 마음을 연 에리카의 모습을 보니 맥이 풀렸다고나 할까. 이거 둊나 대인배인기라! 아놔.
아니, 화도 안나? 그렇게 상처를 받았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용서가 돼?
<그딴 자식 잊고 보란듯이 잘 살아보거라>하며 응원해주었더니, <시발그래도 사랑이 제일이얌>하며 쪼르르 남자 품에 안기는 친구를 보는 기분이랄까. 그래, 네가 행복하다니 된 거지.
넌 절대 아니라는 수많은 나의친구
난 너땜에 친구들까지 다 잃었지만 

                                                     <I Don't Care> - 2ne1
아이구 이 가시나야......

*
이렇게 막 주인공을 욕하며 봤지만, 재밌다. 결론도 상당히 깔끔하다.
사람 속 지대로 긁어대는 히데노리의 연애담은 보는 동안 주인공들에게 몰입하게 되어 그들의 갈등에 함께 동요된다.
어른들의 리얼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들은 싱크로율이 높아 데미지도 상당하고 그만큼 잔인하다. 오카자키 마리의 작품들도 그렇다.
연애담이 질척질척한 건 어쩔 수 없다.
쿨하게 살 수만 있다면 세상살이 그깟 거 간단하고 명료할텐데.....

*
이 정도는 리얼한 어른들의 연애물이고, 일반적으로 소년/남성 취향의 연애 만화는 판도가 좀 다르다.
소위 하렘류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남주는 끊임없는 여난으로 진히로인과 삐걱거리다 화해하고, 오해하고(오해는 개뿔) 화해하고, 반복반복.... 뭐 그런 식으로 사랑을 키워간다는 얘기다.
오해라는 건, 진히로인이 사사롭고 유치한 이유로 삐치거나, 여자들한테 휘둘리는 남주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화해는 대부분 진히로인의 용서. 아씨바! 얘들한테 이런 개념 주입하지마!

주인공은 소년/청년 만화의 패턴대로 우유부단하고 찐따같은 새끼다. 어찌된 게 이런 녀석이 인기가 은근히 좋다.
여캐들이 말하는, <그에게 반한 이유>라는게, 80% 이상이, <다정하고 모성본능을 자극해서>, 라는 거다. 우유부단하고 찐따같은 새끼에게 어울리는 포인트가 아닌가!
우유부단하니 오지랖 넓게 아무 여자한테나 다정하고 착한 척 굴테고, 찐따 같으니 하는 짓이 못 미더워 신경쓰이고 도와주게끔 할테고.
전자는 여자들이 주의해야할 <바람둥이> 자질이 농후한 남자들의 전형이다. 후자는 간혹 여자들이 착각하는, <나만이 그를 구원할 수 있다>를 자극하는, 뭐 이 따우가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타입이라, 뭐 그렇게 놓고 보면 제대로 <연인> 완성이다.
순정만화가 소녀, 여자들의 로망이라면, 하렘류의 소년만화는 남자들의 로망이다.
개인적으로 하렘이든 역하렘이든, 우유부단한 주인공은 짜증난다.

*
남성 취향의 연애물에서 다수의 히로인은, 늘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헌신적인 여성형이다.
이리저리 여자에 휘둘려도, 내 사랑은 온리 유 하며 돌아올 때마다 따뜻하게 맞아주는 여자, 덧붙이자면 바람은 바람일 뿐이라고 용서해주는 여자다. 남자들이여, 세상에 진정 그런 여자는 없다. 있다면 그건 그저 여자의 허세일뿐.

여성 취향의 연애물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여주인공이 끝내주는 킹카와 잘되는 얘기니까.
거기에 덧붙이면, 자신만 바라봐주는 남자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이건 대다수의 여자들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다.
남자는 여자의 첫남자이고 싶어하고, 여자는 남자의 마지막 여자이고 싶어라 한다잖은가.
그래서 가끔 개망나니바람둥이새끼를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을거라 착각하는 여인네들도 많다.
여자들이여, 모성본능이라는 이름의 에스트로겐이 만든 환상에 현혹되지 말자.
본성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자기 소모적인 희생을 하느니,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아끼자.
언젠가 아름답게 빛나는 그대에게 홀딱 반한 상대가 나타날지어니! 아, 뜬금없어라.




(+)
아씨 역시 마무리가 어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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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스포일러 알게 뭐야요. 이미 때 지난 영화들인데.
얼마 전 별 생각없이, 더 문(Moon) 내용이 뭐냐, 물었다가 그대로 악의없는 스포일러를 당했었드랬다. 씨밤.


01.
UP 업- Pixar를 사랑합니다.

자두맛 할배와 초코맛 우편배달부 러셀

귀여워. 사랑스러워! 한 세번 정도 본 거 같다.
쪼꼬렛 뽀사먹는 케빈도 사랑스럽고, 당신을 좋아할 것 같다는 개새끼들도 사랑스럽고. 골수애견국다운 마인드라 가능했던 섬세한(!) 표현이었다 본다.


02.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 <별의 목소리>등

-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는 초속 5cm
영화 초반에 여주인공이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말한다.


<초속  5센티미터>나 <별의 목소리>에서도 우주선이 태양계를 뚫고 나가는 것이 그닥 신선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첨단 기기들과 생활하는 그런 미래상도 아니다. 우주선이 태양계 뚫고 나간지는 오래되었지만, 지구인들은 여전히 지구에서 지금처럼 지지고 볶으며 산다. 세계 정복이나 우주 정복을 꾀하는 미친색히가 설치지도 않고, 러시아워, 취업, 수험, 범죄, 반복되는 삽질 컨셉으로써 ego도 별로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인간이 새삼 대단하게 변하지도 않았다.
이런 식으로 표현된 리얼한 근미래상을 좋아한다. 뒤늦게 <별의 목소리>가 신카이 마코토 원작이라는 걸 알고는 다른 작품들도 찾아서 봤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고양이 집회> 등의 중단편 애니들이 있는데, 특히 <고양이 집회>는 5분 정도의 짧은 단편임에도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심심하면 다시 보곤 한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뭔가, 피융! 슝슝! 우와아악! 받아라! 죽어라! 이얍! 하는 기합이나 효과음이 없는, 말 그대로 감수성 그득하여 오랜만에 가슴이 촉촉했더랬다.
또 하나 놀란 건 제작 과정인데, 아씨바 이 인간 진짜 가내수공업자였다!
<초속 5센티미터> 말미에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을 마구 넘기다가(자막이 없는 관계로), 설마설마 하며 화면을 되돌려 보니, 작화 등을 혼자 작업 하기라.
울랄라, 굉장하잖아!


별의 목소리 中
지극히 평범한 일상. 우주로 핸폰 메일이 전송된다는 것이 우주시대의 기술 발전의 혜택. 단 전송시간이 좀 걸린다.



03.
2012 - 재난 영화, 씨바 돈이 최고다.


재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2012>이라는 숫자는 상당히 특별하게 다가와서 피하지 않고 봤다.
땅이 붕괴되고 뒤틀리고 폭발하는 건 진짜 스릴있었지만, 참 민망한 헐리우드식 마무리는 안습이다.
막말로 돈 없음 그냥 죽어야 하는 거고, 뭐 그래, 그만한 프로젝트를 할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하겠냐.
이건 뭐, 이런 일이 터져도 유전자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연령적으로나, 뭐 하나 들어맞는 게 없다. 아씨바. 그러니 기미가 보이면 욜라 중국 국경 넘어가는 거다. 그리고 티벳으로 들어가 주변에 떠도는 댐건설 소문을 귀담아 듣고 등산장비와 월동 장비를 준비하고 요이땅 하는 거다.
그건 그렇고, 헐리우드 아니랄까봐, 주인공과 그 가족 빼고 죄다 죽어 나간다. 거기다가 죽는 사람들 죽도록 고생하다가 주인공이랑 주인공 가족 살리고 죽어. 이런 옘병. 그 중국 노동자 형 죽었음 진짜 대박인데.
무엇보다 러시아 부호의 밴틀리 시동과 이기적인 가족 사랑, 어쨌든 아빠답게 쌍둥이 살리며 몸 날린 건, 존쿠삭과 그 가족 살린다고 마구 제작진에 의해 죽어나간 캐릭터보다 나았다고 본다. 그리고 헐리우드답게 동물(강아지)은 살았다.


04.
Knowing 노잉 - 인류는 어쨌든 살아남는다


이건 TU 영화관 무료 기간 때 우연찮게 보게 됐는데, 그간 니콜라스 케이지 출연작이 그닥 끌리지 않았던 것을 감안해서 별 기대없이 봤다. 게다가 영화 정보는 전무했고.
이것도 앞서 말한 <2012>와 같은 류라면 같은 류.
인류 존망에 관한 영화다.
어찌보면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과 맥이 통하는 내용이다.
메신저들이 인류의 멸망을 막으려고 새싹들을 안전하게 옮긴다. 그게 오버로드가 신인류의 진화를 돕는 것과 같고, <선택>이라는 것에 헐리우드적 휴머니즘이라는 게 덜 보여서 괜찮았다.
이런 식의 종말이라면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돈과 권력, 우수유전자 등과 같이, 선택의 기준이 지극히 인간적인 노아방주식보다 훨씬 숭고한 느낌이다.


세계 핏덩이들은 모두 바퀴벌레만큼 질긴 인간종을 전 우주로 퍼트리는 사명을 갖는다.
그래, 이번엔 좀 잘하자.



05.
Summer Wars 썸머워즈 - 되는 집안

<다이하드 4.0>에서도 느꼈지만, 요즘은 천재가 맘만 먹으면 세계 정복은 껌이다.

재미있었다. 인터넷 시대에 네트워크 어쩌구 시스템이 일으킬 수 있는 재앙으로 말미암아 이런 저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지도 않으며 그것을 경고하는 논문이나 창작품들은 꽤 많다.
이걸 리얼하게 영화로 만든다면 참 끔찍하고 답답하지만, 알록달록 애니로 만들면 경쾌한 느낌이다.
여튼 인류 종말 시점에서 세계를 구한 건 일본 어떤 마을에, 알고보면 대단한 집안이었던, 대가족과 손님이었다.
일촉즉발에서 간신히 세계도 구하고, 덕분에 집 앞에 온천까지 터져 대박난 집. 게다가 고시엔 출전 중인 이 집안 손자가 지구 존망이 걸린 날 경기에서 승리도 했고.
뭐 말 그대로 되는 집안이었다.
아마도 이 집안 어르신의 고상한 취미가 한 몫한 듯.


할머니가 즐겨하시던 고스톱이 인류를 구할 뻔했다. 고스톱은 치매 예방에도 좋다니 너무 무시하진 말자.


06.
Avatar 아바타 - 하드웨어는 훈늉. 소프트웨어는 거기서 거기.


눈을 현혹시키는 색감이나 볼거리는 진짜 풍족.
그러나 색감과 볼거리가 너무 현란하여 정작 메세지 전달은 뒷전. 영화가 재미있음 됐지 뭔 놈의 메세지 전달이야! 하며 콧방귀 뀔지도 모르겠지만, 정신없이 줄거리와 그림만 쫓다보니 감상이라고는 늘 그렇듯 결국 침략자의 변절자가 원주민을 구한다는 흔하디 흔한 패턴만 남았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지만, 현란한 화면 덕에 제대로 전달 받은 느낌은 아니다. 게다가 왜 늘 이방인이 리더가 되어 원주민을 이끌어 승리하고, 오야붕이 되는 거냐? 식상하잖아!
그렇다고 두 번 볼 기운은 없다. 누구 말마따나 화면의 폭력적일 만큼 현란한 색감은 좀 피곤하긴 하다. 아, 그래도 3D로는 보고 싶긴 하다. 겁나 멀미 난다던데.....


07.
폭풍우 치는 밤에 - 망상


워낙 유명한 애니였는데, 이제사 봤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우정.. 이라고 쉴드 먼저 치고.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아니, 이미 소문으로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오해의 소지는 충분했으므로, 이런 망상은 무죄다.
게다가 그간 나리타켄씨 덕에 잠깐 금단의 드라마CD를 듣게 되어서리, 증폭된 망상은 백만동료들의 의견에 동조하며, 숨겨진 제작 의도를 확인했다고 확신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08.
다이하드 4.0 - 역시 몸으로 떼워야 한다.

불혹의 나이를 넘은 브루스, 몸으로 떼우는 것도 이게 마지막일라나;;;;

앞서 <썸머워즈>에서도 말했지만, 천재가 맘만 먹으면 까짓껏 세계 정복은 일도 아니다.
영화 선전 문구에 <디지탈 시대의 아날로그 형사> 라고 적혀있다.
뭐 긴말 필요없이, 이거면 된다.
<리쎌웨폰>과 <다이하드> 시리즈처럼 꼴통 형사 나오는 거 참 좋아라 했는데. 조금 아쉽지만, 별 수 없이 브루스의 존 맥클레인도 여기까지인 거 같다.
수고 했수다 맥클레인.


ETC.
볼트 - 그닥 기대치도 없고 대단히 재밌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구 씹을 정도로 후지지도 않았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2 - 그냥 별로 신선하지 않았고 정신만 더 없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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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먹은 것들 1탄

Sundry 2009. 2. 20. 21:01

읽은 순서가 아니라 생각나는 순서대로.......
몰아서 기록할려니까 막 헷갈리네.
1탄이다.. 일단은... 

1. 검의 대가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트
검의 대가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Arturo Perez-Reverte) / 김수진역
출판 : 열린책들 2004.09.10
상세

아, 겁나 멋진 돈 하이메. 늙어도 남자라고, 코르소처럼 고저 이쁘다 싶으면 눈이 홀랑 뒤집어지는 돈 하이메가 조금 미웠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코르소에게 없는 우아함이라는 것이 있고 그래서 그의 고뇌가 더욱 아름다웠고, 그래서 난 용서가 됐고. 어쨌든 돈하이메, 당신 너무 멋있다.


2. 요시다 슈이치
최근 자주 사게 되는 작가. 생각보다 국내에 들어온 작품이 많다. 처음 접한 것이 <워터>였는데, 책값가지고 장난한 출판사 때문에 꽤 풋풋했던 책 내용은 깡그리 까묵고 분노만 남게했던 기억. 지금도 요시다 슈이치의 짤막한 작품(200페이지 안팍)을 양장본으로 찍어내어 9천원 받아 처먹는 출판사가 많아서 선택 기준은 200페이지를 넘기고 할인율이 높은 책이다.

* 7월 24일 거리
7월 24일 거리
국내도서>소설
저자 : 요시다 슈이치 / 김난주역
출판 : 도서출판재인 200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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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나의 청춘시대를 보는 것 같아서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나, <실패를 두려워 하는 것>은 지금도 가끔 나의 얄팍함을 쥐고 흔든다.

* 퍼레이드
퍼레이드
국내도서>소설
저자 : 요시다 슈이치 / 권남희역
출판 : 은행나무 200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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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형식으로 서로 얽혀있는 인물들의 각각의 사건이, 이러쿵 저러쿵 복잡하지 않게 아다리가 맞아가는 걸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기에 적절하게 재미있다.

* 일요일들
일요일들
국내도서>소설
저자 : 요시다 슈이치 / 오유리역
출판 : 북스토리 200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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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과 관련된 에피스드들로 이루어졌다. 뭐랄까, 퍼레이드에서도 그런 느낌이었는데, 조금 진부한 소재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읽고나서 조금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 최후의 아들
최후의 아들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요시다 슈이치 / 오유리역
출판 : 북스토리 200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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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까마에게 얹혀사는 기둥서방...... 아, 그가 그에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부디 그 공원에서 별 일이 없길 바란다고.

3. 부주의한 사랑 - 배수아
부주의한 사랑
국내도서>소설
저자 : 배수아
출판 : 문학동네 199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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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의 무거운 습기가 피부로 스며들어 손끝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만큼 나른하다. 안개때문에 몽롱하고 숨이 좀 가쁘다. 읽는 내내 이런 느낌.


4. 한밤 중의 행진 - 오쿠다 히데오
한밤중에 행진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오쿠다 히데오(Hideo Okuda) / 양억관역
출판 : 도서출판재인 20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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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할인으로 주문. 일본 사소설류에서 굉장한 것을 기대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게 비싼 양장본 때문인 거 같다. 아시발  겁나 비싼 우리나라 책값이니 사소설 류의 킬링타임 용 책이 짜증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냥 페이퍼백으로 내서 한 4천원 선으로 가격 책정해주면 나도 고맙겠다.

큰 건수를 터트리려 했지만, 일이 좀 꼬이게 된 삼인방과 야쿠자와, 중국 야쿠자와 초뻔뻔 미술상 이야기. 어쨌든 야쿠자의 돈을 노린 애초의 두 명과 그보다 더 큰 돈을 노리고 아울러 아빠 뒷통수 치려는 목적이 더 강한 딸래미, 역시나 비슷한 건수를 노리는 중국 야쿠자와 딸내미를 능가하는 초뻔뻔 미술상 아버지가 야쿠자의 가정식(?) 카지노를 둘러싸고 우왕좌왕 돈가방 들고 튀고 쫓고 하는 이야기. 오야붕이 중국 지배인에게 당하는 시추에이션은 펄프픽션이 떠올라.


5. 벽장 속의 치요 - 오기와라 히로시
벽장 속의 치요
국내도서>소설
저자 : 오기와라 히로시(Hiroshi Okiwara) / 신유희역
출판 : 예담 2007.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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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역시 오기와라는 인간적이고 따뜻해. 그리고 치요, 너무 귀여워.


6. 악마의 사랑 - 임노월
악마의 사랑
국내도서>소설
저자 : 임노월 / 방민호역
출판 : 향연 200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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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에 정말 흔치 않았던 탐미주의 작가. 예스러운 글이라서 조금 독특한 느낌도 들지만, 이 작가의 작품은 현대식으로 번안해서 출판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광수를 비롯한 당시 주류 작가들과 설전을 벌이다가 절필하고, 이후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많이 안타깝다.


7. 미시마 유키오
일본 우익. 게다가 나르시즘. 1970년 할복하는 장면이 방송국 카메라에 녹화된 희대의 사건을 만든 장본인인 미시마 유키오. 가끔 진짜 이 사람 속까지 우익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히 태생적으로는 우익인 거 같지만.
이 사람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괴리감과 늘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키는 인물들을 보며, 이게 미시마 유키오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쓸데없이 우익 골통으로 죽어버려서 좀 아깝다는 생각.

* 파도소리
파도소리
국내도서>소설
저자 : 미시마 유키오 / 이진명역
출판 : 책세상 200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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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과격한 우익이 이런 낭만적 글을 쓰다니. 참 기묘한 사람.
미시마 유키오가 얼마나 헬레니즘을 동경하는 지 알 수 있다. 어찌보면 마초들이나 우익들이 남성성에 대해 집착하는 걸 보면 헬레니즘이 아마 이상적 세계일지도.

* 열대수
열대수 - 미시마 유키오 대표희곡
국내도서>국어와 외국어
저자 : 三島由紀夫,다락원편집부 / 일본어저널편집부역
출판 : 다락원 199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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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싸서, 이게 뭐냐 싶어 주문했던 희곡. 희곡! 희곡이었다. 게다가 일한대역문고. 말하자면 절반은 일본어. 실제 프랑스에서 있었던 사건을 미시마 유키오답게 감각적이고 히스테릭하게 맹글었다. 
 

8. 오스카 와일드
셧업하고 펭귄 클래식 만세. 아 시바 책값은 겁나 후덜덜했지만 고급스러운 사양에 그냥 넘어갈래.
오스카 와일들의 아름다운 재능을 찬양하자.

* 살로메
살로메
국내도서>비소설/문학론
저자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 권오숙역
출판 : 기린원 200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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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클래식에서 나온 건 아니지만서도.....
비어즐리 삽화가 50% 오스카 와일드니까 봐준다 50%로 고작 50페이지의 내용을 보려고 산 책. 난 만족한다. 영어공부 겸사 읽어봐, 싶지만 난 영문버전은 안 읽는다. 그냥 비어즐리 삽화니까, 오스카 와일드니까. 아깝지 않다. 성경에 단 몇 줄 기록된 세례 요한과 살로메의 이야기를 날구라로 재탄생 시킨 오스카 와일드의 탐미적 시각에 박수를 치고 키스를 보내는 것이 나의 몫이다. 브라보!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국내도서>소설
저자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 김진석역
출판 :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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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대략의 줄거리야 너무 유명하고 또한 여러 분야에서 모티브가 되는 작품. 가끔 행복한 왕자가 오스카 와일드 작품이라는 얘기를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있더라. 나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읽고 행복한 왕자가 오스카 와일들의 작품이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수긍했다.


9. 잔혹 - 콜린 윌슨

서양사 다이제스트 같은 느낌. 내용이나 전문성이 예상과 달라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는 괜찮다. 책 덮고 제대로 된 역사 공부의 의의를 되새겨 봤다.(풋) 아, 인간이란! (이마에 손 얹고 먼산)


10. 우상의 눈물 - 전상국
우상의 눈물 - 전상국
국내도서>소설
저자 : 전상국
출판 : 민음사 200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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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헛 살았다. 지금껏 이런 작가를 모르고 있었다. 오정희 때만큼의 임펙트. 막 남자 오정희라고 떠들어댔다. 아, 죄송합니다. 당신들께 충성!


11. 칼의 노래 - 김훈
칼의 노래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김훈
출판 : 생각의나무 2007.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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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류



12. 내 남자 - 사쿠라바 가즈키
내 남자 (양장) - 제138회 나오키상 수상작!
국내도서>소설
저자 : 사쿠라바 가즈키 / 김난주역
출판 : 도서출판재인 2008.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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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라고 사이드 바에 놓여 있기에, 제목이 맘에 들어 클릭하고 책 첫페이지가 맘에 들어서 주문했던 책. 여러모로 굉장히 자극적이며 임펙트 있는 책이다. 어찌보면 부녀자들을 겨냥한 로맨스 소설 같기도 한 것이, 딱 만화같은 느낌이다. 주인공 남자의 포스가 심상치 않음이 가장 큰 이유. 흐느적거리는 긴 다리며, 위험한 분위기의 잘생긴 남자. 게다가 엄청나게 집착하는 두 사람의 극단적인 사랑 이야기. 진짜 씨바 읽다가 깜짝 놀랐다. 진짜, 깜짝............. 금단... 제약이 클 수록 불타오르는 로맨스.... 아, 그렇게 따지게 되면 <내 남자>가 짱 먹어라.


13. 나카노네 고 만물상
나카노네 고만물상
국내도서>소설
저자 : 가와카미 히로미(Hiromi Kawakami) / 오유리역
출판 : 은행나무 200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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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하면서도 뭔가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연애소설>. 느낌 좋다.


동면 중 읽은 것들과 까먹고 메모 안 한 것들 중 기억나는 것.
그래, 자면서 읽었다. 난 항상 자면서 읽는다. 취침 전 독서가 제일 좋다.
그래서 책장만 덮으면 고스란히 다 까먹는다. 덕분에 웬만한 건 두 번씩 훑어보는 버릇. 누군가. 이건 이런 내용이었어, 또는, 그 책 읽어봤어? 하고 말하면 그제야, 아! 나 그것 읽었는데.. 하면서 기억이 난다. 이러니 기록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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