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알게 뭡니까>


*
히데노리의 연애물은 묘하게 리얼해서 사람 속을 제대로 긁어대는 매력이 있다.
그 중 <섬데이>는 주인공의 취직 분투기 같은 거다. 아울러 연애 삽질기이기도 하다.



*
주인공 카라사와는 여친 에리카와 오래된 연인으로 공인 커플이다. 이미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운 여친에 비해 카라사와는 별 생각없이 지내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초반에 미적미적거리다가 에리카에게 추월 당한다.
이 찐따같은 새끼는 자신이 뒤쳐지고 있다는 사실에 초조해한다. 게다가 에리카와 스스로 비교하여 땅을 파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취업 준비생인 마이와 알게되어 공감대를 형성하더니, 이 씹새가 훌러덩 마이랑 자는 것이다.
마이는 카라사와에게 여친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난 두번째라도 괜찮아>라는 대사를 날린다. 그리고 카라사와는 돌파구를 찾듯 넘어간다. 이후로 마이를 취업 동지라며 에리카에게 둘러대고, 뒤로는 바람을 피워댄다.
카라사와가 두 여자 사이를 오가는 중에, 에리카와의 관계를 지키려했던 마지막 마지노선은, 마이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이지 않은 거였다.
그러나 결국 그 선이 무너지고, 그러자마자 카라사와새끼는 막장으로 치닫는다.
카라사와의 마음이 자신에게 기울었다는 걸 안 마이는, 믿는 구석이 있으니, 당당하게 에리카앞에 나타나 카라사와를 만나기도 한다.

카라사와가 마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당연히 에리카와의 틈은 점점 벌어진다.
마이의 등장에 불안감을 느낀 에리카는 카라사와의 변심을 눈치채지만, 그에 대한 미련으로 상처가 깊어짐에도 그를 놓지 못한다.
에리카의 불안을 감지하고 긴장하지만 우유부단한 카라사와는 결국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
카라사와는 아무런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저 도망가기 급급했다.
그리고는 가장 최악의 방법으로 에리카를 상처입힌다.

세상에 이렇게 더러운 경우를 봤나! 저 난장판을 보라지.


비오는 날 취업 설명회에 다녀와 에리카에게 흠뻑 젖은 양복 다림질을 부탁하고 돌아간 카라사와는 자취집에 마이를 불러 어른들의 유흥을 즐긴다. 아씨발놈
당연히 그걸 모르는 에리카는 내일 입고 갈 그를 위해 양복을 들고 그의 자취방에 간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두 연놈을 발견하고 만다.


이런 새끼를 용서할 수 있어?

아 진짜, 카라사와새끼가 양복을 에리카에게 맡기고 가는 순간부터 에리카가 두 사람을 발견하는 장면까지, 어찌나 복창이 터지고 열이 받던지! 뻔뻔하고 뻔뻔한 새끼, 내가 달려가 아구창을 다 날려주고 싶더라.
배신과 기만. 그녀에게 카라사와새끼가 얼마나 잔인한 짓을 했는가.

그리고 며칠 후, 카라사와는 에리카를 불러 헤어지자고 말한다. 뻔뻔하게!
물론 에리카는 이별식의 대미로 카라사와의 뺨을 올려부치고 떠난다.



이별 후, 카라사와는 에리카와 함께 했던 물건과 흔적을 깨끗하게 치워버리고 마이와 정식으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
뭐, 연애라는 게 늘상 하나가 끝나야 다른 하나가 시작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 과정에 기만과 배신이 있었다는 점에서 용서가 안되는 거다. 게다가 얼마나 치졸하고 옹졸하고 우유뷰단했던가!
카라사와는 마이에게 헌신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더러워서, 울화가 치밀어 그 부분은 대충 훌렁출렁 넘겼다.

그러다가 마이의 전 남친이 나타난다. 물론 마이는 자신이 예전에 불륜 상대가 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이 전 남친이 바로 그 유부남이다. 이 새끼도 어찌나 찌질한지.....
마이는 전 남친에게 이리저리 마구 흔들리더니, 결국 카라사와를 찬다.


마이에게 차이기 직전. 비도 온다.

선택받지 못한 카라사와는 강한 척 허세 작렬하며 오히려 마이를 위로한다. 야 웃겨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 밤, 차인 카라사와의 청승맞은 모습을 보니 속이 다 후련했다.
그러니까 넘의 가슴에 대못 박고, 넘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 제눈과 가슴에도 피눈물 나게 되는 거다.


이후 카라사와는 정신차리고 열심히 취업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잡아 성장해 간다.
그러던 중에 옛 여친이 너무 그리운거라. 이 개색히. 뭐 이딴 개자식이 다있나.
그나마 카라사와는 자신이 얼마나 뻔뻔하고 웃기는 새낀지 알고 있다. 그런데도 계속 에리카에게 기대게 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에리카는 어찌된 게 그 개자식 전화를 잘 받아주고, 걱정까지 해준다.
뭐 순수하게 친구 관계인 것처럼 각자 그렇게 자위질을 해대는데, 결국 두 사람 모두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여기서 카라사와는 에리카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죄책감에 쉽게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자신이 제대로 취업이 되고 성취했을 때 프로포즈하겠다고 결심한다.
뭐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카라사와는 대기업 취직을 발로 걷어차는 대단한 전설을 만들고 취업에 성공할 뿐더러, 옛사랑을 다시 찾기까지 한다.

*
에리카와 다시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카라사와의 모습과 각오는 좋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에리카의 태도는 의문이 든다.
에리카는 마치, <날 데리러 와요> 하듯이 손 내밀어주기만 기다렸다는 거다.
보는 내가 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쉽게 그에게 다시 마음을 연 에리카의 모습을 보니 맥이 풀렸다고나 할까. 이거 둊나 대인배인기라! 아놔.
아니, 화도 안나? 그렇게 상처를 받았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용서가 돼?
<그딴 자식 잊고 보란듯이 잘 살아보거라>하며 응원해주었더니, <시발그래도 사랑이 제일이얌>하며 쪼르르 남자 품에 안기는 친구를 보는 기분이랄까. 그래, 네가 행복하다니 된 거지.
넌 절대 아니라는 수많은 나의친구
난 너땜에 친구들까지 다 잃었지만 

                                                     <I Don't Care> - 2ne1
아이구 이 가시나야......

*
이렇게 막 주인공을 욕하며 봤지만, 재밌다. 결론도 상당히 깔끔하다.
사람 속 지대로 긁어대는 히데노리의 연애담은 보는 동안 주인공들에게 몰입하게 되어 그들의 갈등에 함께 동요된다.
어른들의 리얼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들은 싱크로율이 높아 데미지도 상당하고 그만큼 잔인하다. 오카자키 마리의 작품들도 그렇다.
연애담이 질척질척한 건 어쩔 수 없다.
쿨하게 살 수만 있다면 세상살이 그깟 거 간단하고 명료할텐데.....

*
이 정도는 리얼한 어른들의 연애물이고, 일반적으로 소년/남성 취향의 연애 만화는 판도가 좀 다르다.
소위 하렘류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남주는 끊임없는 여난으로 진히로인과 삐걱거리다 화해하고, 오해하고(오해는 개뿔) 화해하고, 반복반복.... 뭐 그런 식으로 사랑을 키워간다는 얘기다.
오해라는 건, 진히로인이 사사롭고 유치한 이유로 삐치거나, 여자들한테 휘둘리는 남주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화해는 대부분 진히로인의 용서. 아씨바! 얘들한테 이런 개념 주입하지마!

주인공은 소년/청년 만화의 패턴대로 우유부단하고 찐따같은 새끼다. 어찌된 게 이런 녀석이 인기가 은근히 좋다.
여캐들이 말하는, <그에게 반한 이유>라는게, 80% 이상이, <다정하고 모성본능을 자극해서>, 라는 거다. 우유부단하고 찐따같은 새끼에게 어울리는 포인트가 아닌가!
우유부단하니 오지랖 넓게 아무 여자한테나 다정하고 착한 척 굴테고, 찐따 같으니 하는 짓이 못 미더워 신경쓰이고 도와주게끔 할테고.
전자는 여자들이 주의해야할 <바람둥이> 자질이 농후한 남자들의 전형이다. 후자는 간혹 여자들이 착각하는, <나만이 그를 구원할 수 있다>를 자극하는, 뭐 이 따우가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타입이라, 뭐 그렇게 놓고 보면 제대로 <연인> 완성이다.
순정만화가 소녀, 여자들의 로망이라면, 하렘류의 소년만화는 남자들의 로망이다.
개인적으로 하렘이든 역하렘이든, 우유부단한 주인공은 짜증난다.

*
남성 취향의 연애물에서 다수의 히로인은, 늘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헌신적인 여성형이다.
이리저리 여자에 휘둘려도, 내 사랑은 온리 유 하며 돌아올 때마다 따뜻하게 맞아주는 여자, 덧붙이자면 바람은 바람일 뿐이라고 용서해주는 여자다. 남자들이여, 세상에 진정 그런 여자는 없다. 있다면 그건 그저 여자의 허세일뿐.

여성 취향의 연애물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여주인공이 끝내주는 킹카와 잘되는 얘기니까.
거기에 덧붙이면, 자신만 바라봐주는 남자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이건 대다수의 여자들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다.
남자는 여자의 첫남자이고 싶어하고, 여자는 남자의 마지막 여자이고 싶어라 한다잖은가.
그래서 가끔 개망나니바람둥이새끼를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을거라 착각하는 여인네들도 많다.
여자들이여, 모성본능이라는 이름의 에스트로겐이 만든 환상에 현혹되지 말자.
본성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자기 소모적인 희생을 하느니,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아끼자.
언젠가 아름답게 빛나는 그대에게 홀딱 반한 상대가 나타날지어니! 아, 뜬금없어라.




(+)
아씨 역시 마무리가 어설퍼...






'Sund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노, NTR 입니까?  (4) 2010.02.19
문장을 쓰는 법 - 무라카미 하루키  (1) 2010.02.07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추노 오프닝!  (2) 2010.02.06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