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미덕의 불운>

Sundry 2008. 11. 13. 20:13

아주 오래 전에 빌려본 책인데 친구는 책을 분실했다고 한다.
문고판 사이즈에 두께도 무척 얇아서 12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이며 무슨 해적판 음란서적도 아닌 것이, 역자 연혁이라든지, 후기라던지 이 따위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기억을 못하고 있는지도....)

허탈하고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내용이 변태스러워서가 아니다.
사드의 '악명'에 비하면 소프트한 편이었다. 물론, 당시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던 본인에게는 살짝 감당하기 어려운 점이 있긴 했지만서도......

내용은 이러하다.
주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일단 책을 읽은지가 10년이 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쥐스틴과 줄리에뜨, 두 자매는 부모가 죽자 약간의 유산을 물려받는다.
그 유산을 쥐고 두 자매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언니인 줄리에뜨는 무척 자유분방한 아가씨로, 방탕하고 자유로운 삶을 산다.
반대로 동생인 쥐스틴은 착하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로 착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두 자매의 인생은 일상적인 설정을 뒤집는다.
착하고 아름다운 쥐스틴의 인생은 처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반면, 줄리에뜨는 그 방탕함과 자유분방함에도 아주 순탄한 인생을 간다. 단순히 순탄만한 게 아니라 정말이지, 그렇게 막살아도 대단한 꽃길이었다.
언니는 백작인지 남작인지, 어쨌든 귀족 부인이 되고, 그러는 동안 착하고 아름다운 쥐스틴은 세상의 모든 악행을 경험하게 된다. 갖은 고문과 학대, 성적인 폭력.. 그렇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처참한 인생을 산다.
그리고 두 자매는 다시 만나게 된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쥐스틴을 언니 줄리에뜨는 평생 보살펴주겠노라며 동생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자, 여기까지 본다면, 이건 그나마 아주 일반적인 엔딩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 된다면 사드가 아닌 것이다! 암만!

두 자매의 만남. 처참한 꼴이 되었지만 동생을 사랑하는 언니를 만났으니, 이제 행복한 엔딩이 남았구나, 하는 독자는 이어지는 마무리에 충격을 받는다.

쥐스틴은, 줄리에뜨의 보살핌에, 자신에게 이런 행운이 있을 리가 없다며 괴로워 하더니, 어느 폭우가 쏟아지는 밤, 밖으로 뛰쳐나가더니, 이건 악마의 농간일 거라며 반미치광이가 되어 절규를 한다.
그리고는..... 화려하게 번개에 맞아 사망한다.

맙소사!

사필귀정이라고? 권선징악?
사드는 바로 이 오래된 정설에 엿을 먹이고 있는 거다!

맞다.
이 부조리함. 18세기에도, 그리고 지금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드는, 세상은 꿈결처럼 아름답고 선하지 않으며, 그런 곳에서 미덕은 악운을 부를 뿐이라고 말한다.
사드는, 아이처럼 순진한 18세기의 어리숙한 이들을 향해, 잔인한 어른이 되어 경고하는 것 같다.
아니, 지금에 와서도 그 경고는 유효하다.

이러니 사드의 저서가 18세기에 얼마나 사회적 충격이었겠는가. 아니, 뭐 지금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서도.....
사드의 저서들은 사회 통념에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단지 그 강도가 심하고, 표현이 과격할 뿐.
뭐, 이렇게 말하지만 사드의 책이라곤 이거 하나 읽어봤다=_=;

그러고 보니, 이 책 내용을 생각할 때면, 고등학교 때 몰래 읽던 데카메론이 매번 생각이 난다.
울 오라버니가 졸업하면 읽으라고 못 읽게 해서 더욱 보고 싶었던 데카메론은, 예상과 달라 오라버니에게 배신감을 느꼈더랬다.
물론, 데카메론은 지금도 책장에 꽂혀있다!
예상보다 흥미로웠던 책들이라, 가끔 데카메론을 볼 때면, 이 책이 생각난다.

책을 구하려고 보니, 이거 초희귀본이란다.
래이브래드버리 단행본이나, 앙드레지드의 사전꾼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편선 같은 거.
이런 책들은 좀 다시 나와도 될 거 같은데..........;

희귀본 얘기가 나오면, 잃어버린 책들 때문에 가슴이 쓰리다. ㅠㅠ
특히 멜랑꼴리의 묘약! 이 책을 잃어버린 후부터 난 누구에게도, 웬만하면 책 안 빌려준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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