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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x줄리엣 OP <祈り ~You Raise Me Up~> - 박정현
워낙 유명한 곡으로 시크릿 가든의 뢰블란이 아일랜드의 민요를 편곡한 이후로 여러 번 커버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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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데이즈>에 나오는 애들과 같은 16세 청소년의 사랑을 그린 애니메이션 <로미오x줄리엣>.
<스쿨데이즈>감상 후 생긴 찝찝함을 상큼하고 촉촉하게 씻어 준, 심신정화용으로 우수한 애니메이션이다. 같은 16세지만 이렇게 다르다. 시대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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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면 입 아픈 셰익스피어의 세계 유산급 희곡이 원작이다. 가나다만 할 줄 알면 아는 게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제대로 된 희곡을 읽지 않았어도, 로미오와 줄리엣 줄거리 모르는 이 없다.
세계 유산급 명작이다 보니 로미오와 줄리엣의 오마주는 지금도 수많은 창작품에 나타난다. 그래서 웬만하면 신선하지도 않은 소재다.
그래서 애니 <로미오x줄리엣>은 작화를 기대했을 뿐이다. 세월이 지나도 그 로맨틱한 설정을 변함없이 심금을 울리니까. 아울러 복창도 터지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좋아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별로였다. 아니, 셰익스피어 작품 중 제일 별로였다.
수줍은 소녀 시절, 그 유명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후 운명적 사랑을 꿈꾸던 친구들 사이에서, 애절한 두 청춘의 운명보다,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그들의 행보가 얼마나 많은 민폐를 끼치는가에 중점을 두고,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이기적이다>라는 인생 다 산 여자 같은 감상을 쎄웠다.
이미 난 눈치 없는 왕자새끼 배를 쑤시지 못하고 물방울이 돼버린 한심한 <인어공주>를 위해, 그녀가 일찌감치 바다로 돌아가 퀸오브씨가 되어 미모와 권력을 손에 쥔 그녀에게 홀딱 반한 왕자를 희롱하는 내용의 제2 창작에 몰두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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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로미오x줄리엣>이 기존 로미오와 줄리엣과 다른 건, 뚜렷한 선악 구도다.
원작에서 두 집안은 원수지간이지만, 누가 더 잘났고 못났고가 없다. 그런데 애니에서는 다르다.
로미오는 네오베로나의 정권을 잡은 몬태규 집안의 귀한 아들로 곱게 자라, 마음은 따뜻하나, 아버지에 순종하는 소년이다.
그에 비해 줄리엣은 로미오보다는 스펙타클한 시절을 보내는 중이었다. 십여 년 전 몬태규에 의해 가족과 가신들이 모두 살해되고 겨우 목숨을 건지고, 이유는 알지 못한 채 숨어 살면서 몬태규의 압정에 신음하는 민중을 돕기도 한다.
그러던 중 뭐 수순대로 로미오와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며 두근두근 막 첫사랑의 꽃을 피울 찰라. 16세가 되던 날 줄리엣이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이 어찌 됐든 네오베로나를 구할 구세주와 같은 존재라는 부담스러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엄청난 진실을 알게 된 줄리엣이 그 크기와 중량감을 미처 가늠하기도 전에 그녀는 비극적 운명으로 끌려간다. 아마도 그중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사랑하는 로미오가 자신의 부모를 죽인 몬태규의 아들이라는, 말하자면 원수집안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줄리엣의 사정을 모르는 어른들은, 16세가 된 캐플럿 가문의 유일한 혈육이자 네오베로나의 정통성에 부합되는, 그래서 몬태규가 눈이 시뻘게지도록 찾아 죽이려 드는, 줄리엣을 중심으로 캐플럿 가문의 옛 영광을 되찾고 네오베로나를 탈환하기 위해 봉기한다.


붉은 옷의 가면을 착용한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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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로미오x줄리엣>에서 줄리엣은 기존 공주님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로미오쪽이 공주님이랄까.
줄리엣의 생존을 알게 된 몬태규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고, 로미오 또한 그게 줄리엣이라는 걸 알고 순진하게도, 아버지를 설득해 막아보려 애쓰지만 통할리 없다. 결국 둘이 사랑의 도피도 결행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붙잡힌 로미오는 탄광으로 쫓겨가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별수 없다. 어른들의 더러운 세계에 휘말린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다. 그것도 대단한 용기였다고 본다.
또한 줄리엣은 자기를 위해, 캐플럿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동료를 배신할 수 없는 소녀였다. 제대로 싸가지를 갖췄기에 정말 맘에 들었지만, 그냥 그대로 숨어버리지, 하는 맘도 있었다. 뭐, 뻔히 그러지 못하다는 걸 알기에 더 그런 맘이 들었겠지만.


두 사람의 짧지만 행복했던 시간

탄광으로 쫓겨난 로미오도 성장한다.
로미오는 격정적인 왕자님, 혹은 기사는 아니다. 그는 온화하고 다정한 소년이다. 그의 따뜻함은 주변 사람들을 감화시킨다. 그렇지만 이 온화한 소년은 자신이 사랑한 연인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망설임도 없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로맨틱한 감정인가.


티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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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볼트는 로미오의 부족한 카리스마를 메우는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의 특징상 첫 등장 시기가 늦으며, 등장 횟수가 많지 않다. 거기에 하얀 용마를 타는 로미오와 달리 그는 검은 용마를 탄다.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원하는 로미오, 줄리엣과 달리 티볼트는 캐플럿의 가신들과 마찬가지로 급진파다.
거기에 출생의 비밀. 미스테리한 인물이며, 검술도 끝내준다. 거기에다가 검은 머리 미남에 말수도 적고 직설적이다.
그의 역할은, 마치 어린 날 처음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소재를 접했던 내가, 당시 그 주인공들에게 하고 싶었던 것을 대신해주는 느낌이다.
그들에게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운명의 안타까움을 이해하고 있다.
티볼트 외에도 줄리엣의 동료는 그들의 운명의 잔혹함을 알고 안타까워한다. 어른들의 대의명분을 16세의 어린 소년과 소녀에게 짊어지게 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모를 리가 없다.

이러한 역할을 대신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가 있는데 그가 바로 윌리다.
캐플릿 가문의 생존자와 줄리엣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고 그들의 울타리를 대주는 집안의 아들인지 조카인지로 등장하는 윌리는, 극장과 극단을 운영하는 작가다.
그렇다. 이름에서 알다시피, 그리고 배경에서 알다시피, 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모델이다.
그는 줄리엣과 로미오의 운명을 희곡으로 만들고 줄리엣의 사랑을 응원한다. 줄리엣 주변의 어른 중에 아마도, 줄리엣의 사랑을 대놓고 응원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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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위하는, 네오베로나를 위한 일이라며, 줄리엣을 압박하는 어른들이지만, 까놓고 캐플릿 가문에 충성하고 몬태규에게서 권력을 강탈당하거나, 제거된 자들이 모여 일으키려는 정치적 반정일 뿐이다.
어쨌든, 몬태규가 집권한 네오베로나는 감시와 처벌만이 가중되는 시대이긴 하다. 민중들은 이런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네오베로나의 중심이 되어 온 캐플릿 가문의 혈통이 필요했다. 그래서 캐플릿 가문과 함께 봉기한 이들은 대중의 바람을 얻어 몬태규의 압정에 신음하는 백성을 구하겠노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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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은 중요하지 않다.
두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어쭙잖게 해피엔딩이 될 리도 없다.
그러나 결말을 알기에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과 자신들의 운명을 바꾸려는 노력이 더욱 아프고 애틋하다.
거기에 오프닝 곡인 박정현의 <You Rise Me Up>은 더욱 감동을 배가시킨다. 뉴에지풍으로, 뉴에이지풍답게 드라마틱한 곡이다.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매번 반복되는 오프닝을 빠지지 않고 본 경우는, 지금까지 <로미오x줄리엣>뿐이다.
마지막 회 이후 다시 오프님을 보면 지금도 콧끝이 시큰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 나 아직 그렇게 감정이 마르지 않았구나, 새삼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로미오x줄리엣> 오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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